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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더의 품격/리더의 서재

'데미안' 2/2 (3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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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 안 읽고 독일 가실 건 아니죠? 귀로만 들으신다면 36분이면 됩니다. 눈으로 보신다면 30분이면 됩니다. 1부를 먼저 보고오세요.^^ 글에 해당하는 음악은 아래에 있습니다.

소설 '데미안' 1/2

내용 듣기 1 (18분). typecast.ai
내용 듣기 2 . (18분)

 

베아트리체

 부모님은 김나지움의 소년 기숙사에 내 거처를 정해 주셨다. 만약 부모님들이 나를 들여보맨 그 곳이 어떤 곳인가를 아셨다면 놀라신 나머지 온몸이 마비된 듯 굳어졌을 것이다. 문제는 항상 시간이 감에 따라 내가 선량한 아들이 되고 쓸모 있는 시민이 될 수 있는가, 또는 내 천성이 다른 길로 뻗어나갈 것인가에 달려 있었다. 

 지금의 나는 아주 변했다. 나는 외부 세계에 대해 전혀 무관심한 태도를 취하고 온종일 나의 내부에 귀를 귀울이고 내 마음 속깊이 흐르는 금지된 어두운 강물소리를 듣는 데만 몰두했다. 이 반 년 동안에 나는 갑자기 성장했으며 키는 크고 야위었다. 몸은 아직 성숙하지 않았으나 세상 보는 눈은 달라졌다. 소년의 상냥함도 나에게서 사라졋다. 나는 사람들이 나를 사랑할 수 없으리라는 것을 느꼈다. 나 자신도 나를 결코 사랑하지 않았다. 막스 데미안에 대해서 나는 때때로 말할 수 없는 그리움을 느꼈다. 

 나는 남몰래 슬픔과 고독, 그리고 가끔 발전적인 절망에 지쳐 있으면서, 겉보기에는 남자답게 세상을 멸시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는 고독 속으로 말려 들어가는 자신을 저주했다. 나는 학교에서, 집에서 쌓아 올린 지식을 파먹으며 보냈다. 그리고 나는 내 나이 또래 아이들을 어린애 취급을 하고 업신여기는 버릇이 생겼다.

 산책 도중에 나는 가끔 일종의 황홀감과 우울함, 세상에 대한 일종의 멸시와 자기 멸시가 가득 한 그런 황홀감을 맛보았다. 

아! 얼마나 인생이란 무의미한 것인가?

 기숙사에서 제일 나이가 많은 알퐁스 벡과 교외에 있는 조그만 술집에 앉아 알쏭달쏭한 포도주를 들며, 두꺼운 잔을 서로 부딪쳤다. ... 술에 익숙지 않아서 곧 나는 많이 떠벌리기 시작했다. ... 그공안 카인과 아벨의 이야기를 아주 훌륭하게 했다. 그는 내 어깨를 치고는 굉장한 놈이라고 했다. ... 인정을 받았다는 것, 그리고 연장자에게 무엇인가 중요시 되었다는 것 때문에 내 가슴은 기뻐서 크게 부풀어올랐다. 그는 어떻게 해서든지 내 연애 사건을 고백시키려고 했다. 그래서 나는 이야기를 계속할 수가 없게 되었다. 이야깃거리가 될 만한 연애를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벡은 계집애들에 관해서 훨씬 많이 알고 있었다. 그는 18세쯤 되었는데, 벌써 많은 경험을 쌓았다. 특히 계집애들이란 기분을 맞춰 주고 친절하게 대하는 것밖에는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 존재들이다. 그러나 그건 참으로 근사하게 보이지만 진실은 아니다. 그보다 부인들에게 더 많은 효과를 바랄 수 있다. 부인들은 훨씬 영리하다. 이를테면 노트나 연필을 파는 가게의 야켈트 부인 같은 여자와는 이야기가 잘 통하고 그 가게의 카운터 뒤에서 일어났던 온갖 일은, 어떤 책에도 씌어 있지 않은 것이라고 했다.

 우리의 대화는 좀 저속했고, 무엇인가를 찾아볼 수 없었다. 나는 더 이상 천재적인 어린 소년이 아니었으며 단지 어른의 말에 혹해 귀기울이고 있는 소년에 불과했다. ... 나는 생전 처음으로 취해 있었다. 그것은 아름답지도 않았고, 몸시 고통스러웠으나 무엇인가 매력적이고 달콤한 것을 지니고 있었으며, 반란과 방종이 있었으며, 생명과 정신이 있었다. 

 나는 나 자신을 한심하게 보지 않을 수 없었다. 떠돌아 다녔고, 세상을 경멸한 나! 오만한 정신으로 데미안의 생각에 공병했던 나! 내던져지고 음탕하며, 무서운 충동의 습격을 받아 술취했고, 더럽고 메스껍고, 속되고 방종한 놈으로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 그러나 이런 감정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고통받는 것이 내게는 또한 쾌락이 되기도 했다. 나는 다시 한번 어두운 세계에, 그리고 악마의 패거리에 속하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그 세계에선 멋들어진 놈으로 통했다. ... 반면, 내 가슴 속 깊은 곳에는 근심이 가득 차 불안한 마음이 나부끼고 있었다. 

 어느 일요일 아침에 주막을 나와 어린애들이 깨끗하게 머리를 빗고 일요일의 옷차람을 하고 밝고 만족하게 놀고 있는 것을 보았을 때, 눈물이 흘러 내렸던 것을 아직도 나는 기억한다. ... 나의 가슴속에서는 거꾸로 내가 조소했던 모든 것을 존경해 오고 있었다. 

 그 봄날에 공원에서 나는 몹시 마음을 끄는 한 소녀를 만났다. 그 여자는 키가 컸고, 날씬했으며, 우아한 옷을 입었고, 영리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 여자는 첫눈에 내 마음에 들었는데 나는 그런 형의 여자를 좋아했으므로 곧 그 여자에 대한 공상을 시작했다. 그녀는 나보다 그리 나이가 많은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러나 훨씬 성숙해보였고, 우아했고, 균형이 잡혔고, 거의 완벽한 처녀였다. 그러면서도 그녀에게서는 내가 무엇보다도 좋아하는 교만함과 처녀다움이 엿보였다. 

 아, 내 마음 속의 어떤 욕망이나 어떤 충동도 이 존경과 숭배의 욕망보다 더 강하고 깊은 것은 없었다. 나는 그 여자에게 베아트리체라는 이름을 붙였다. ... 점점 나는 술집과 밤거리의 방황을 멀리하였따. 나는 다시 혼자 있을 수 있었고, 독서를 다시 좋아하게 되었으며 다시 산책을 즐겼다. 이 갑작스러운 전향으로 나는 많은 조서를 받았다. ... 나는 다시 절실한 노력으로 파괴된 생의 한 시대의 잔해로부터 '밝은 세계'를 세우려고 노력했다. ... 쾌락이 나의 목적이 아니고 순결이 나의 목적이었다. 행복이 나의 목적이 아니고 미와 정신이 나의 목적이었다.

 영국판 그림의 베아트리체와 나의 베아트리체는 닮지 않아서 내 여자의 그림을 그리기로 했다. 그러나 그것은 소녀의 얼굴이라기보다는 소년의 얼굴처럼 보였다. 머리카락은 나의 아름다운 소녀의 머리처럼 밝은 금발이 아니고 불그스름한 갈색이었다. 턱은 강직하고 딱딱햇으나, 입술은 붉게 타고 있었다. 전체적으로 약간 뻣뻣하고 가면 같은 인상이었으나 강한 인상을 주었고, 신비한 생명에 넘쳐 있었다. 

 완성된 그림 앞에 앉았을 때 나는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그것은 반은 남자, 반은 여자 같았고, 연령이 없었고, 의지가 강하면서도 몽상적이고 굳은 듯한 모습이었다. 그러면서도 은밀하게 생기에 넘쳐 있는 일종의 신의 모습, 또는 성스러운 가면같이 보였다.

 바로 그때부터 나는 어렸을 때에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꿈을 많이 꾸기 시작했다. ... 점점 낯이 익어졌다. 전에 만난 일이 있다. 아는 사람이다, 라는 생각이 점점 확실해지기 시작했다. ... 어째서 늦게야 알았던가! 그것은 데미안의 얼굴이었다. 

 그때 점점 그것이 베아트리체도, 데미안도 아니고 나 자신이라는 느낌이 문득 들었다. ... 그 주일 동안에 나는 전에 읽은 어느 책보다도 나에게 강한 인상을 준 어떤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 후에도 나는 그토록 감명 깊게 읽은 책은 없었다. 있었다고 한다면 아마 니체 정도였을 것이다. 그것은 노발리스가 지은 책이었는데 서간집과 산문으오 되어 있었으며, 나는 그 책을 잘 이해하지는 못했으나, 그 모든 것이 나의 마음을 굉장이 끌었고 압도했다. 그말 중의 하나가 지금 생각난다. 나는 그 말을 펜으로 그림 밑에 썼다. '운명과 감정은 하나의 개념에 대한 표현이다.' 그 말을 나는 이제야 이해할 수 있었다. 

 막스 데미안에 대한 나의 그리움은 다시 강렬해졌다. ... 그는 내가 그에게 인사할 것을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내가 태연한 듯 인사를 했을 때 그는 나중에 손을 내밀었다. 그의 독특한 악수! 그렇게도 굳고 따뜻하면서도 싸늘하고 남성적인 악수!

 그는 내 얼굴을 찬찬히 보고 말했다. 

 "많이 컸군, 싱클레어."

 도시 변두리에서 나는 그에게 술집에 같이 가자고 권했다. 그는 같이 갔다. .. 학생들이 술 마실 때의 버릇에 내가 얼마나 능숙한가를 보이면서, 첫 잔을 단숨에 비웠다. ... 하지만 너의 마음 속에 있는 어떤 것, 너의 생명을 이루고 있는 그것은 이미 알고 있을 거야. 우리들 마음 속에는 모든 것을 알고 모든 것을 원하고 우리들 자신보다 모든 것을 더 잘 해내는 누군가가 들어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 네게 도움이 될 거야.

 데미안은 그것이 언제나 한 개이며, 똑같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마지막에 그는 나에게 문장을 먹으라고 강요했다. 내가 그것을 삼켜 버렸을 때 나는 끔찍스런 놀라움을 느꼈다. 내가 삼킨 문장의 새가 내 속에 살아 있었으며, 나를 가득 채우며, 내부에서 나를 쪼아먹기 시작한 것이다. 죽음의 공포에 가득하서 나는 깜짝 놀라 잠에서 깨었었다.

 나는 다시 문장의 새를 그리려고 했다. 그 새가 정말로 어떻게 보이는지 나는 뚜렷이 알지 못했다. .. 내종이 위에 그려진 새의 머리는 노란 황금빛이었다. 기분이 내키는 대로 나는 그것을 계속 그려 나가서 며칠 내에 완성했다. 그려진 것은 날카롭고 겁 없어 보이는 매의 머리를 한 한 마리의 커다란 날짐승이었다. .. 이번에도 같은 예감으로 그에게 매의 그림을 보내기로 결심했다. 

 시험이 다가왔다. 나는 전보다 훨씬 더 공부를 해야 했다. 선생님들은 내가 갑자기 불량스러운 생활태도를 바꾸고 난 이후 다시 나를 부드럽게 대해 주었다.

 이 변화로 나는 다른 사람을 찾아가지도 않았고 남이 나에게 접근해 오는 것을 허용하지도 않았으며 오히려 나는 나를 더욱 고독하게 만들고 있었다. 나는 그 어느 곳인가를, 데미안을, 멀고 먼 운명을 향하고 있었다. ... 그것은 물론 베아트리체에게서 비롯되었다. .. 나는 아무에게도 내 꿈과 내 기대와 내 변화에 관해서 한 마디도 말할 수가 없었다. 설사 내가 원했을지라도...... 그러나 내가 그것을 어떻게 원할 수 있었을까?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내가 그린 꿈의 새는 날아가서 나의 친구를 찾아내었다. 그리고 그 회답은 가장 신비스러운 방법으로 나에게 왔다. ... 책갈피에 끼어있는 쪽지는 친구들의 장난이라 여기도 열어보지 않으려 했지만 나도 모르게 그것을 펴 보고 있었다. .. 나는 그 종이에 시선을 던지는 순간, 그 중의 한 마디에 끌려 깜짝 놀라서 읽었다. 내 가슴은 냉기를 뒤집어 쓴 것처럼 운명 앞에서 오그라들었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새의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파괴해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프락서스다.'

 나는 몇 번이고 그 글을 읽고 깊은 생각에 잠겼다.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그것은 데미안의 답장이었다. 

 수업시간. 앞부분은 듣지 못한 설명을 폴렌 박사는 계속했다.

 "우리는 그 종족의 세계관과 고대 문화의 신비주의적 결합을 합리주의적 입장에서 보듯이 그렇게 소ㅂ가하게 보아서는 안 됩니다. 지금 우리가 말하는 의미로서의 학문이란 고대에는 도대체 없었던 것입니다. 그 대신 고도로 발달된 철학적 신비주의적인 진리들이 있었습니다. 그것으로부터 더러는 마술과 유희가 생겨났고, 그것은 종종 사기와 범죄로 연결되는 수도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마술도 또한 고귀한 근원과 깊은 사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내가 아까 예를 든 '아프락서스' 같은 것이 그 중의 하나입니다. 사람들은 그 이름을 그리스의 주문과 결부시키고, 그것을 오늘날 미개 민족간에 더러 남아 있는 것과 같은 일종의 마귀의 이름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내 생각으로는 '아프락서스'는 보다 의미 있는 무엇인 것 같습니다. 우리는 그 이름을, 예를 들면 신적인 것과 악마적인 것을 결합시키는 상징적인 과제를 가진 어떤 신으로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

 어떤 특수한 꿈, 또는 환상과 유희가 자꾸 반복되어 나에게 찾아왔고... 집 안에서 어머니가 나를 향해 걸어왔다.. 포옹하려고 하자 어머니가 아니었고 힘있게 생겼는데도 매우 여성적인 모습이었다. 그 모습은 나를 끌어당기고 온몸이 떨리는 애무 속에 나를 받아들였다. ... 그 여자의 포옹은 온갖 외경심에 저촉되는 불순한 것이면서도 동시에 그 이상 없는 행복을 뜻했다. 

 쾌락과 공포, 남자와 여자가 뒤섞이고 성스러운 것과 추악한 것이 서로 얽힌, 그리고 가장 섬세한 순진함에 의해서 흠칫 놀라는 깊은 죄악 - 이러한 것이 나의 사랑의 꿈의 모습이었고 또한 아프락서스의 모습이었다. 사랑은 천사의 모습이면서 악마였고, 여자와 남자를 한 몸 속에 가지고 있었고, 인간이면서 짐승이었고, 최선이면서 동시에 최악이었다. 이 모든 것을 살도록 나는 운명지어져 있다고 생각했고, 이것을 맛보는 것이 내 운명이라고 생각되었다. 나는 그것을 동경하면서도 공포를 느꼈다. 그러나 그것은 언제나 내 눈앞에 있었으며 항상 내 머리 위에 있었다. 

 나는 다른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을 전부 다 할 수 있다. .. 다만 한 가지만을 나는 할 수가 없었다. 나의 내부에 숨겨져 있는 목적을 끄집어내어 다른 사람이 하듯이 내 앞에 그것을 그리는 일만은 할 수 가 없었다. 다른 사람들은 그들이 교수나 판사나 의사 또는 예술가가 되겠다는 것을 정확하게 알고 있었고, 얼마나 시일이 걸릴 것이며 그것이 주는 이익이 무엇인가도 알고 있었다. 나는 할 수가 없었다. 어쩌면 나도 언젠가는 그와 비슷한 사람이 될지 모르지만 어떻게 내가 그것을 지금 알 수 있을 것인가. 어쩌면 나는 몇 년 동안 노력하고 또 노력해도 아무것도 되지 않고 아무 목적에도 도달하지 못할지도 몰랐다. 또는 어떤 목적에 도달하더라도 그것이 나쁘고 위험하고 끔찍한 목적일 수도 있지 않은가.

 나는 꿈 속 애인의 모습을 종종 지나치게 생생하고 분명하게 보았다. 그 모습은 나 자신의 손보다 더 뚜렷이 보였다. 나는 그 모습을 어머니라고 불렀다.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울었다. 나는 그것을 애인이라고 불렀고, 모든 욕망을 충족시켜 주는 성숙한 입맞춤을 예감했다. 나는 그것을 악마, 매춘부, 흡혈귀, 또는 살인자라고 불렀다. 

 대때로 나는 이 모든 일이 참을 수 없이 고통스럽게 느껴졌다. 나는 언젠가 자살할 각오도 하고 있었다. 

 우연이라는 것은 없다. 무엇을 절대적으로 필요로 하고 있는 사람이 그 필요한 것을 찾은 경우, 그것은 그에게 주어진 우연이 아니라 그 자신이다. 그의 욕망과 필연성이 그를 인도하는 것이다. 나는 시내를 산책하는 동안 어느 교외의 작은 교회로부터 파이프 오르간 소리를 두서너 번 들은 일이 있었다. 그러나 멈춰서서 듣지는 않았다. 다음 번에 내가 그 앞을 지나갈 때 또 그 오르간 소리가 났다. 나는 바하의 곡이 연주되고 있음을 알았다. 문간으로 갔으나 문이 닫혀 있었다. 

 

 그 음악 소리는 특이했고, 마치 기도처럼 울리는 매우 개인적인 의지와 완강한 표정을 지니고 있었다. 나는 이런 느낌을 가겼다. 저 연주자는 이 음악 속에 보물이 숨겨져 있는 것을 알고 마치 그의 생을 위한 투장처럼 이 보물을 얻으려고 노력하고 두들기고 애쓰는 것이라고... 나는 기교적인 의미에서의 음악은 잘 모른다. 그러나 나는 영혼의 바로 이러한 표현을 어려서부터 본능적으로 이해하였고 음악적인 것을 당연한 무엇으로 느끼고 있었다. 

연주자를 만나서 아프락서스에 관한 얘길 나눴다. 그는 내가 아프락서스를 아는 것에 대해 매우 놀란 눈치였다. 그것은 아무나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의 집에 찾아가서 말없이 불을 응시하고 있었다. 불속에서 매를 발견했다. 불을 응시한다는 것은 이상하게도 기분좋고 풍요해지는 느낌이었다. 

 어떤 형상을 세밀히 관찰하는 것과 불합리해 보이며 난잡하고 괴상하게 느겨지는 자연 형상에 몰두하는 일은 우리들의 마음 속에서 우리들이 이 형상을 만들어 낸 어떤 의지와 조화되어 있는 존재라는 깨우침을 갖게 해준다. .. 우리의 내부에 있는 신과 자연 속에서 활동하고 있는 신은 동일한 불가분의 신이었다. .. 그 영혼의 본질을 우리는 알지 못하지만 우리에게는 때때로 사라의 힘, 또는 창조의 힘으로 느껴진다. 

 "우리는 흔히 개인의 한계를 너무 좁게 책정해 버리는 경향이 있소. 우리는 개성적이며 다른 것과 판이한 것이라고 인정하는 것만을 개인적인 것이라 생각하고 있는 거요. 그러나 우리는 세계의 총체로 만들어져 있으며, 우리는 각각 우리의 육체가 물고기에 이르기까지의, 아니 더 먼 곳까지의 진화의 족보를 간직하고 있듯이, 우리의 영혼 속에는 인간의 영혼이 한 번이라도 체험한 모든 것을 간직하고 있소. 여태가지 존재한 모든 신과 악마는 그들이 그리스도인의 것이든 중국인의 것이든 아프리카 흑인의 것이든 모두 우리 속에 함께 잇고, 가능성으로서, 소망으로서, 출구로서 존재하는 것이오. 만약 인류가 다 망해 버리고 한 번도 교육을 받은 일이 없는 보통 정도의 재능을 가진 어린아이가 곡 한 명만 살아남는다 해도 이 아이는 사물의 과정 전부를 다시 발견할 것이며, 그것은 신으로, 악마로, 천국으로, 계명과 금지로, 신구약 성서로 될 것이오. 그 아이는 모든 것을 다시 창조할 수 있을 것이오."

 "그렇다면 어디에 개인의 가치가 있는 것일까요? 만약에 우리가 모든 것을 우리 속에 벌써 완성된 것으로 가지고 있다면 무엇 때문에 우리는 노력을 하는 것이지요?"

 "그들의 각자 속에는 인가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기는 합니다만, 그들이 이 가능성을 부분적으로라도 자각할 수 있게 될 때 비로소 이 가능성은 그들의 것이 되는 거요."

 우리의 대화는 대강 이런 종류의 것이었다. .. 그것은 모두가 나를 형성하도록 도와 주었고, 껍질이 나로부터 떨어지는 것을, 알의 껍질을 깨뜨리는 것을 도와 주었다. 그리고 매번 나는 머리를 좀더 높이 쳐들었고 좀더 자유로워졌으며 이윽고 나의 노란 새가 아름다운 맹조의 머리를 파괴된 세계의 껍질로부터 내밀었다. 

 꿈 속에서 날고 있다는 나에게 연주자 피스토리오스는 말했다.

 "당신을 날게 하는 그 힘은 누구나가 가지고 있는 인류의 큰 재산입니다. 그것은 온갖 힘의 뿌리와 결합의 감정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곧 두려움을 자아냅니다. 그것은 끔찍하게도 위험한 일입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처럼 나는 것을 포기해 버리기를 좋아합니다. 법규가 정하는 데 따라서 보도를 거니는 편을 택합니다. .. 당신의 점점 이 비행의 주인이 된다는 것, 그리고 당신을 끌어가는 커다란 보편적인 힘에 미묘하고 조그만한 독특한 힘, 하나의 기관, 하나의 조종이 작용된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 그 발견 없이는 떠내려가고 맙니다. .. 다시 말하자면 당신의 영혼이 스스로의 힘으로 이 조절기를 고안해낸 것은 아니란 말이오. .. 그것은 몇 천 년 전부터 존재한 것이니까요. .. 그러니까 당신이 꿈 속에서 날 때 쓴 부레는 이러한 폐와 같은 종류인 거요."

 그는 나에게 동물학 책 한 권을 주면서 물고기의 이름과 그림을 가르쳐 주었다. 나는 이상스러운 전율감을 느끼면서 내 내부에 있는 초기 진화의 단계로부터 남아 있는 한 기능이 생생히 살아 있는 것을 느꼈다.

 

 

 야곱의 투쟁

 내가 그 이상한 음악가 피스토리우스로부터 들은 아프락서스에 관한 이야기를 여기에 간단하게 옮길 수는 없다. 그러나 내가 그에게서 배운 것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나 자신에 도달하는 길에 한 걸음 더 다가간 일이다. 나는 그 당시에 열여덟 살의 유별난 청년이었다. .. 나는 나 자신을 남과 비교할 때면 언제나 종종 오만과 자만심을 느꼈으나, 또한 동시에 우울과 모욕감을 느끼기도 했었다. 

 자기 스스로의 힘으로 성장한 기인이었던 피스토리우스는 나에게 나 자신에 대한 존경과 용기를 간직할 것을 가르쳐 주었다. 나의 말 속에서, 나의 꿈 속에서, 나의 환상과 생각 속에서 그는 언제나 가치 있는 무엇을 발견하고, 그것을 심각하게 다루고 토론함으로써 나에게 모범을 보여주었다. 

 "당신 자신도 도덕가여서는 안됩니다. 당신은 스스로를 남과 비교해서는 안됩니다. .. 당신은 종종 자신을 괴짜라고 생각하고 자신이 다른 사람들과 다른 길을 간다고 스스로를 비난합니다. 그래서는 안됩니다. .. 싱클레어, 우리의 신은 아프락서스입니다. 그는 신이면서도 악마이고, 밝은 세계와 어두운 세계를 모두 자기 속에 가지고 있습니다. 아프락서스는 당신의 어떤 생각에 대해서도 또 당신의 어떤 꿈에 대해서도 거스르지 않습니다. 그는 당신을 버리고 새 냄비를 찾아 그 속에서 자기의 사상을 끓입니다."

 우울할 때면 나는 피스토리우스에게 북스테후데의 파사칼리아를 연주해 달라고 청했다. 

 

음악을 트세요.

이 음악을 들을 때마다 나의 기분은 즐거웠고, 내 영혼의 목소리가 옳다고 시인하도록 도와주었다. 

 "젊은 친구! .. 그 꿈을 간직하고 살아 가시오. 그 꿈을 즐기시오. 그 꿈을 위해 제단을 세우시오! 그것은 완전한 것은 아니지만 하나의 길이기는 합니다. 우리가, 당신과 내가 언젠가 세계를 혁신할 수 있을지는 두고 보아야 알 거요. 그러나 우리의 내부의 세계는 매일 혁신되어야 합니다. .. 우리는 아무 것도 두려워해서는 안되고 영원히 우리의 내부에서 갈망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금지되어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되는 거요."

 "당신은 좋은 의미를 가진 생각이 떠올랐을 때 그것을 몰아내고 또 그것을 도덕적으로 트집을 잡음으로써 해롭게 만들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 당신에게 언젠가 다시 미친 것 같은, 죄악에 넘친 생각이 떠오르거든 싱클레어, 당신이 누구를 죽이고 싶거나 어떤 끔찍스럽게 외설스런 행위를 하고 싶어지면, 그렇게 당신 속에서 환상을 만들고 있는 것이 바로 아프락서스라는 것을 잠깐만 생각하십시오! 당신이 죽이고 싶어하는 사람은 실제 존재하는 사람이 아니라 단지 하나의 겉껍질에 불과합니다. 우리가 어떤 인간을 증오할 때 우리는 그의 모습 속에서 우리들 내부에 들어있는 무엇을 찾아내고 증오하는 것입니다. 우리들 내부에 없는 것은 우리를 흥분시키지 않습니다."

 피스토리우스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의 내부에 있는 것 이외에는 다른 현실이란 없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외부의 그림을 현실이라고 생각하고 그들 내부에 있는 그들 자신의 세계에 말하도록 내버려두지 않기 때문에 그처럼 비현실적으로 사는 것입니다. 그렇게 살아도 행복하게 살 수는 있어요. 그러나 우리가 한 번 다른 것을 알고 나면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길을 가는 것을 선택할 자유가 없어집니다. 싱클레어, 대부분의 사람들의 길은 쉽고 우리의 길은 어렵습니다. 그래도 우린 갑시다."

 금욕생활을 2년 째 하고 있는 크나우어에게 내 생각을 전해주고 싶었지만, 내 자신의 체험을 통해 얻는 것이 아니면, 또 나 스스로가 그것을 준수할 수 있을만큼 성숙한 다음이 아니면 함부로 남에게 충고할 수는 없었다.  나에게서 해결책을 찾지못한 크나우어는 자살기도를 했고 우연한 이끌림에 찾은 낯선 곳에서 그를 발견한다. 

 "너는 잘못된 길을 걸은거야! 잘못된 길을! 우리는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돼지가 아니야. 우린 인간이야. 우리는 신을 만들어 내고는 신과 싸우고 신은 우리를 축복하는 거야."

우리는 말 없이 것다가 헤어졌다. 

 내가 그에게로 가지 않을 수 없었던 그날 밤 이래, 그는 충실한 하인이나 개처럼 나를 흠모했고, 그의 생을 나의 생과 연결시키려고 했고, 맹목적으로 나에게 복종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서 내 마음 속에서 내 친구 피스토리우스를 그처럼 절대적인 지도자라 인정하는데 반대하는 감정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나는 갑자기, 그리고 내가 듣기에도 의아스럽고 깜짝 놀랄 만큼 폭발적인 악의를 가지고 말했다.

 "다시 한번 내게 당신이 꾸었다는 꿈 이야기를 해 주시오. 당신이 말하는 것은 모두 골동품 냄새가 난단 말이오." 

나는 나의 대수롭지 않은 단 한 마디로 그의 본질적인 약점과 그의 고뇌와 상처를 찌른 것을 알았다. 나는 그가 자기 자신도 믿고 싶어하지 않는 그런 부분을 건드린 것이었다. 그의 이념은 케케묵은 냄새가 나고 그는 퇴보적인 탐구자였으며 낭만주의자였다. .. 그가 나를 어떤 길로 인도했으나 그 길은 지도자인 그를 초월하여 그로부터 떠나지 않으면 안되는 길이었다. 

 그때 나는 처음으로 카인의 표적을 내 이마 위에서 느꼈다. 여기서 갑자기 밝은 불길 같은 깨달음이 타올랐다. 우리들 누구에게나 '소임'이 있다. 그러나 아무도 그것을 그 자신의 임의로 선택하고 변화시키고 마음대로 관리할 수 없다. .. 성장한 사람에게는 자기 자신을 찾고 자기 자신 속에서 확고해지고 그 길이 어디에 닿아있던 간에 자기 자신의 길을 더듬어 전진하는 일밖에 아무런 의무도 없었다. 누구에게나 진정한 천직은 다만 자기 자신에 도달하는 것. 한 가지 뿐이었다. .. 자기 자신의 운명을 발견하고, 그 운명을 자신의 내부에서 송두리째 온전하게 끝까지 지켜내는 일이었다.  나는 종이에다 썼다.

 '어떤 지도자가 나를 버렸다. 나는 완전히 암흑 속에 서 있다. 나는 혼자 힘으로는 한 발짝도 걸을 수가 없다. 도와 다오.'

 나는 이 종이를 데미안에게 보내려고 했다. 그러나 그만두었다. .. 그러나 나는 이 짧은 기도문을 암기했고, 종종 혼자 마음 속으로 중얼거리곤 하였다. .. 나는 어렴푸이 기도가 무엇인가를 느끼기 시작했고 나의 김나지움 시절은 끝났다. 

 

 

에바부인

 방학 동안에 나는 몇 년 전 막스 데미안이 그의 어머니와 살고 있던 집에 가 보았다. 어떤 늙은 부인이 나를 데리고 가서 데미안 어머니의 사진을 보여주었다. 나는 데미안의 어머니를 거의 기억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 사진을 보았을 때 내 심장의 고동이 멎는 듯한 충격을 느꼈다. 그것은 바로 내꿈에 나타났던 모습이었다. 바로 그 여자였다. 키가 크고 거의 남자와 같은 느낌을 주는 여자의 모습, 자기 아들을 닮은, 모성적이면서도 엄격함과 깊은 정열을 지닌 듯한 표정의 얼굴이었다. 아름답고 매력적이며, 친근하고도 접근하기 힘든, 악령과 모성, 운명인 동시에 애인인 바로 그 여자였다. 내꿈의 모습이 지상에 살아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나는 기적 같은 것을 느끼고 심하게 몸을 떨었다. 저런 얼굴의 여자가, 내 운명의 모습을 그대로 지닌 여자가 있다니! 어디에? 더구나 그 여자는 데미안의 어머니였다.

 이곳저곳 영감이 떠오르는 곳을 찾아서 이 여인을 찾아서 돌아다녔지만, 나는 나의 추적의 무의미함을 깨닫고 수치스럽고 쓸쓸한 느낌을 안고 바로 집으로 돌아왔다.

 몇주일 뒤에 나는 H대학에 입학 했다. 모든 것이 나를 실망시켰다. .. 내 책상 위에는 니체의 책이 몇 권 놓여 있었다. 나는 그와 함께 살았다. 나는 그의 영혼의 고독을 느꼈고, 그를 쉴새없이 몰아낸 숙명을 느끼며 그와 함께 괴로워했다. 나는 그처럼 가차없이 자기의 길을 간 사람이 있다는 것을 행복하게 생각했다. 

 한 음식점에서 학생연맹 회원들의 노랫소리가 흘러나왔다. 열어 놓은 창으로 파이프 담배의 연기가 구ㅡㅁ같이 흘러나왔고 빽빽하고 높은 목소리의, 그러나 경쾌하지 않고 생기가 없고 단조로운 노랫소리가 파도처럼 흘러나왔다. 

 내 뒤로 두 남자가 천천히 지나가고 있었다. 나는 그들 대화의 한 토막을 들었다.

 "이건 꼭 흑인 부락의 젊은이들 집 같지 않습니까?"

 "모든 점에서 똑같습니다. 심지어는 문신까지도 유행이랍니다. 보십시오. 바로 이것이 젊은 유럽의 모습이지요."

 "당신네 나라 일본에서도 이보다 나을 것이 없을 것입니다. 군중을 쫓아서 따라가지 않는 사람은 어디서나 드문 법입니다. 여기에도 그런 사람이 없는 건 아닙니다."

 그의 한 마디 한 마디는 기꺼운 놀라움으로 내 마음 속에 스며들었다. 나는 그 이야기하는 사람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데미안이었다.

 데미안의 목소리에는 옛날과 같은 어조가 그대로 남아 있었고, 옛날과 같은 아름다운 고요와 안정이 있었고, 나를 사로잡는 힘이 있었다. 이제 모든 것은 잘 해결되었다. 나는 그를 찾아낸 것이다.

 "데미안!"

나는 소리쳤다.

 "너로구나, 싱클레어! 너를 기다리고 있었어."

 "우리는 전에는 그것을 카인의 표적이라고 불렀었지. 아직 기억할지 모르지만. 그것은 우리의 표적이야. 너는 그것을 언제나 가지고 있었어. 그래서 내 친구가 된 거야. 그런데 이제는 그것이 더 뚜렷해졌군."

 그는 유럽의 정신에 관해서 말하고 이 시대의 상징에 관해서 말했다. 그는 도처에 연합과 군중의 집단이 지배하고 있지만 자유와 사랑은 아무 곳에도 없다고 말했다. 이 모든 단체들은 대학생들의 조직과 함창단에서부터 국가의 연맹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다 강제로 조직된 것이며, 불안과 공포와 절망감에서 나온 공동체이며, 내부는 썩고 낡아 붕괴에 직면하고 있다고 그는 말했다. 

 "단체란... 아름다운 거야. 그러나 지금 도처에 일어나고 있는 것들은 아무것도 아니야. 단체는 개인의 상호 이해로부터 생겨나지 않으면 안 돼. 그것은 얼마 동안 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어. 지금 단합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다만 오합지졸에 지나지 않아. 사람들 서로에 대해 두려움을 갖기 때문에 서로 달아나고 만나고 하는 거야. 상류 계급은 상류 계급끼리, 노동자는 노동자끼리, 학자는 학자끼리, 그런데 왜 그들은 두려움을 느끼는 걸까. 우리는 자신과 일치할 수 없을 때만 두려움일 갖게 되지. 그들은 결코 자신에게 귀의하지 않기 때문에 두려움을 느끼는 거야. 자기 자신 속에 있는 미지의 것에 대해서 두려움이 가지고 있는 사람들로만 구성된 단체인 거야. .. 이처럼 두려움에 차서 같이 어울리는 사람들은 공포심과 악의에 차서 아무도 다른 사람을 신용하지 않아. 그들은 이미 이상이 아닌 이상에 매달려서 새로운 이상을 세우려는 자에게 돌팔매질을 하고 있어. .. 유럽이 얼마 동안 기술과 과학이라고 불리는 시장으로 뒤덮여 버렸던 인간성의 의지가 나타날 거야." 

 그날 밤 나는 막스 데미안과 작별 인사를 나누었던 교외의 정원을 다시 찾아가게 되었다. .. 문위에 있는 검은 나무 벽에는 검은 틀의 액자가 끼워진 낯익은 그림이 걸려 있었다. 그것은 세계의 껍지을 깨고 날아오르려 하는 황금빛 매의 머리를 가진 나의 새였다. 나는 가슴이 뿌듯하여 서 있었다. 마치 이 순간에 내가 체험하고 행동한 모든 게 해답과 실현이 되어서 나에게로 돌아오는 것 같았다. 

 새의 그림 곁에 있는 문이 열리고 검은 옷을 입은 키가 큰 부인이 서 있었다. 바로 그 여자였다.

 나는 한 마디도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아들의 얼굴과 마찬가지로 시간과 연령을 초월한 영혼에 넘친 의지만을 담고 있는 얼굴을 한, 그 아름답고 위엄 있는 여인의 나에게 다정하게 미소 지었다. 그녀의 시선은 충족이었고, 그녀의 인사는 고향으로 돌아온 것을 뜻했다. 

 내 꿈 속에서의 모습보다도 더 여왕 같은 모습으로 그녀는 내 앞에 서 있었고, 그녀 곁에 있다는 것은 사랑의 행복이었고 그녀의 따스한 시선은 벅찬 충족감을 안겨 주었다. 

 내가 어떻게 되는 상관이 없었다. 나는 이 여자가 이 세상에 있다는 것을 아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그녀가 나에게 어머니가 되든, 애인이 되든, 여신이 되든간에 아무튼 그녀가 있기만 한다면, 내 길이 그녀의 길 가까이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좋을 것이었다!

 그녀는 내가 그린 매의 그림을 가리켰다. 

 "막스가 당신한테서 이 그림을 받았을 때만큼 기뻐한 적은 없었어요."

 "아들이 학교에서 돌아오더니 말했어요. 이마에 표적이 있는 아이가 있어요. 그 아이는 내 친구가 될 거예요. 라고... 그게 바로 당신이었어요. 당신의 길은 평탄하지 않았으나 우리는 당신을 믿었어요."

 "부인, 어머니, 저는 그 당시 종종 자살하지 않으면 안되겠다고까지 생각했습니다. 그 길은 누구에게나 이렇게 어려운가요?"

 "태어난다는 일은 언제나 어려운 거예요. 새가 알을 깨고 나오려고 온 힘을 다해 애쓰는 것을 아시지요? .. 그저 어렵기만 했나요? 그러나 아름답기도 하지 않았어요?"

 "그래요. 인간은 자기의 꿈을 찾아야 해요. 그러면 길은 한층 쉬워지지요. 그러나 영속적인 꿈은 없어요. 또다시 새로운 꿈이 나타납니다. 우리는 어떤 꿈도 붙들어 두려고 해서는 안돼요."

 나는 눈물이 - 나는 얼마나 오랫동안 울 수 없었던가! - 끊임없이 흘러나와 나를 압도하고 있었다. 

 "싱클레어, 당신은 어린애로군요. 당신의 운명은 당신을 사랑하고 있어요. 당신이 그것에 충실하기만 하면, 당신이 바라듯이 그것은 언젠가는 완전히 당신의 것이 될 거예요."

 넓은 가슴, 단단하고 남성적인 머리, 들어 올린 팔은 단단한 근육이 솟아오른 데미안의 운동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데미안!"

 "벌써 어머니를 만나 뵈었어?"

 "그래 .. 에바 부인! 그분에게 정말 어울리는 이름이야. 그분은 모든 존재의 어머니와도 같으셨어."

  유럽은 굉장한 노력으로 인류의 새로운 무기를 창조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신은 극도로 황폐해져 가고 있는 현대유럽에 대한 비평적인 안목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유럽은 온 세계를 얻기는 하였지만 결국은 그것으로 인해 자기의 영혼을 잃어버리게 될 것이었다. 

 "당신은 자신도 믿고 있지 않는 소망에 몸을 맡기지 마세요. 나는 당신이 무엇을 바라는가를 알고 있어요. 당신은 이 소망을 버리거나, 아니면 완전하고 올바르게 소망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 소망이 확실히 이루어진다고 믿고 바란다면 그 소망은 정말로 실현됩니다. 그러나 당신은 지금 소망을 하고는 또다시 후회를 하고 동시에 두려워하고 있어요. 그 모든 것을 극복해야 해요."

 때때로 나에게는 그녀의 말이, 나를 뒤흔들고 있는 다급한 문제에 대한 내 무의식의 마음의 대답같이 들렸다. 어떤 때 나는 그녀 옆에서 관능적인 욕망에 불타올라 그녀가 만진 물건에 키스를 할 때도 있었다. 그리고 점차 관능적인 사랑과 정신적인 사랑, 현실과 상징이 서로 뒤섞였다. 

 책을 읽다가 새로운 인식을 발견했을 때, 나는 에바 부인의 키스를 받은 것과 똑같은 느낌이었다. 

 "싱클레어! 우리가 종종 말했던 것을 체험하게 될 거야! 세계는 새로워지려고 해. 죽음의 냄새가 나지. 죽음 없이는 새로운 것은 오지 않아"

 나는 기분이 좋지 않았다. 작별 인사를 하고 혼자서 현관을 지나갈 때 풍겨온 히아신스의 냄새가 시들고 맥빠진 시체같은 냄새처럼 느껴졌다. 이미 그림자는 우리 위에 내려진 것이다. 

 

 

 사랑의 종말 

 나는 여름 학기에도 H시에 머물러 있을 수 있었다. 

 잠시 동안 내 속에서 무엇이 굳게 응결 되었다. 그것은 밝고 차가운 무엇이었다. 나는 잠시동안 하나의 결정을 가슴 속에 품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그것이 나의 자아라는 것을 알았다. 차가움이 가슴에까지 올라왔다. 

 말을 타고온 데미안은 전쟁 소식을 전했다. 나는 각오가 되어 있었다. 저녁때 시내를 걸어가자니 여기저기가 온통 야릇한 흥분에 들끓고 있었다. 어디서나 '전쟁'이라는 말이 들렸다. 나는 에바 부인의 집에 가서 함께 마당의 정자에서 저녁 식사를 했다.

 드디어 종말이다. 사태는 급박하게 진전되었다. 곧 전쟁이 시작되었다. 그리하여 은회색 외투를 입은 군복 차림의 이상스럽게 낯선 모습을 하고 데미안도 떠나갔다. 

 그녀는 내 입술에 키스를 하고, 나를 잠시 동안 가슴에 껴안아 주었다. 그녀의 커다란 두 눈은 나의 눈 가까이에서 불타고 있었다. 

 모든 사람들이 형제가 된 것 같았다. 그들은 조국과 명예를 생각했으나 그것은 사실은 우리들 모두가 잠시 동안 드러내어진 '운명'의 모습을 본 것에 지나지 않았다. 

 나는 처음에 끊임없는 사격 때문에 흥분했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에 환멸을 느꼈다. 전에는 나는 왜 인간이 어떤 이상을 위해서 살지 못하는가를 많이 생각해 보았었다. 그러나 지금 나는 많은 사람들, 아니 모든 사람들이 이상을 위해서 죽을 수 있음을 보았다. 그러나 그것은 개인적이거나 자유롭거나 스스로 선택한 이상일 수도 없었고 공통적이고 떠맡겨진 이상임에 분명했다. 

 나는 포플라 나무 옆에서 흙에 파묻힌 채 상처투성이가 되어 발견되었다. 나는 지하실에 누워 있었다. 포탄이 내 위를 날았다. 

 내 침구 바로 옆에는 또 한 개의 침구가 놓여 있었고, 그 침구 위에 누가 있었다. 그는 고개를 앞으로 내밀고 나를 보았다. 그는 이마에 표적을 갖고 있엇다. 그는 막스 데미안이었다. .. 그난 나에게 미소를 지었다.

 "싱클레어!" "꼬마!" 

라고 그는 미소를 띠면서 말했다. 

 "아직도 프란츠 클로머가 생각나니?"

나는 눈짓으로 그에게 대답을 했고 미소지을 만한 여유도 있었다.

 "어린 싱클레어! 내 말을 잘 들어! 나는 떠나지 않으면 안돼. 언젠가 다시 내가 필요하게 될 거야. 클로머나 또는 그밖의 일로 해서. 그때는 네가 나를 불러도 지금까지처럼 말을 타거나 기차를 타고 그렇게 와 줄 수는 없어. 그대는 너 자신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해! 그러면 네 마음 속에 내가 있다는 걸 알게 될 거야. 알겠어? ... 그리고 또 하나! 에바부인의 부탁인데 나한테 키스를 해주면서, 언제든지 싱클레어가 불행하게 되거든 그녀가 해주는 거라고 말하고 키스를 해주라고 했어... 눈을 감아, 싱클레어!"

 나는 시키는 대로 눈을 감고, 데미안이 내 입술 - 전혀 멎을 것 같지 않은 피가 줄곧 흐르는 내 입술-에 가볍게 키스하는 것을 느끼며 곧 잠이 들어 버렸다. 

 다음날 옆자리에는 한번도 본 적이 없는 낯선 사람이 누워 있었다. 

 때때로 나 자신의 어두운 거울 속에 운명의 못브이 어른거리는 것을 들여다본다. 그 검은 거울 위에 나 자신의 모습이, 그-이제까지 내 친구이며 길잡이였던 저 데미안-와 꼭같이 닮은 나 자신의 모습이 보이는 것이다. 

데미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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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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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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