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듣기(13분). typecast.ai |
| 가재가 노래하는 곳
그곳은 위험에 처한 `카야`에게 점핑 아저씨가 도망가라고 한 가장 안전한 곳입니다. 바로 카야의 엄마도 얘기한 `가재가 노래하는 곳`은 과연 어디일까요?
이 책은 `종이 약국`처럼 400쪽이 넘는 장편소설이지만 삽시간에 읽히는 책입니다.
| 70세에 쓴 첫 소설
미국의 동물행동학 박사이자 작가인 '델리아 오언스'는 무려 70세에 첫 소설 '가재가 노래하는 곳'을 출간합니다. 야생 동물을 관찰한 보고서 형식의 글 세 권을 포함해 이 소설 또한 엄청난 인기를 끈 베스트셀러입니다. 무심코 집어서 읽은 책의 몰입도가 심상치 않아 뒤늦게 찾아 알게 되었습니다.
작가는 지나칠 정도로 문학적 감수성이 뛰어난 느낌인데 글의 흐름은 마치 기욤 뮈소의 호흡처럼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복합적인 구성입니다.
| 마을에서 발견된 시체
이야기는 1969년 10월 30일, 마을에서 시체가 발견되면서 시작합니다. 늡지에서 발견된 시체는 마을 유지의 아들인 '체이스'라는 젊은 남자입니다. 그리고는 갑자기 이야기가 1952년 8월, 카야의 어린 시절로 이동하면서 독자의 쉴 틈을 빼앗습니다. 주인공 '카야'의 삶은 마치 정글북을 연상하게 합니다.
'카야'가 살고 있는 곳은 백인 중에서도 쓰레기들만 산다는 판잣집촌, 그곳은 인종차별과 편견이 만연한 곳으로 아버지는 2차 세계대전의 상이군인입니다. 매주 월요일마다 아버지와 가족의 자존심에 해당하는 연금이 지급되고 가족들은 그 돈으로 삶을 연명하듯 살아갑니다. 하지만 전쟁으로 인한 아버지의 트라우마는 가정폭력으로 나타납니다.
| 모두가 떠나던 날
그날은 집안의 모든 공기를 모은 뒤에 현관문이 빨아들이듯 '스압'하며 문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어머니는 생전 신지도 않으시던 신을 신고, 파란 가방을 든 채 평소처럼 카야에게 손도 흔들지 않으시고 집을 나가버렸다. 어머니의 가출을 시작으로 큰언니와 큰오빠, 남은 가족들이 집을 떠났다. 마지막으로 떠나던 조디 오빠의 모습을 기억한다. 튀어나올 듯 부은 눈과 마구 일그러진 얼굴, 다 터져버린 입술을..
그렇게 카야는 아버지와 단둘이 남게 된다. 최대한 눈에 띄지 않도록 피해 다니던 어느 날 아버지는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말과 함께 땔감을 사 오라고 한다. 6살 아이 카야의 생존 본능이 눈을 뜨면서 아버지의 귀가 시간에 맞춰 밥을 해놓기도 한다. 그 덕인지 낚시도 데리고 가는 등 보통의 아버지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 카야의 첫사랑
오빠의 친구였던 '테이트'를 우연히 만난 날, 평소 사람과 가족에게 조차 긴장감을 느끼며 살던 카야에게 처음으로 편안함을 느낀다. 테이트는 카야를 온전히 그 자체로 봐주는 사람이었다. 그와의 만남으로 카야는 안정감을 느끼고 성장을 하게 된다.
아버지와의 사이도 점점 좋아지는 듯했으나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는 사건이 발생한다. 엄마의 편지가 도착한 것이다.
카야는 가장 아름다운 옷을 입고 엄마가 돌아오기를 기다린다. 그리고 신나게 새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갈매기도 따라서 홰를 친다.
"나 오늘 생일이야! 그래서 오늘은 엄마가 돌아올 거야!"
하지만 엄마는 오지 않았다. 카야가 말했다.
"나의 가족은 습지뿐이야!"
엄마의 편지 이후 아버지마저 집을 나가버리고...
| 혼자가 된 소녀
이제는 혼자서 살아가야 하는 어린 카야. 가게의 착한 흑인 주인은 어린 카야가 들 수 있는 최대한으로 가져온 홍합을 보고는 등유와 생필품으로 바꿔준다. 카야는 가게를 나오며 한동안 사탕에 눈길을 주고는 힘없이 돌아선다. 카야가 산 물건을 배에 실어준 흑인 주인 점핑은 손님만 오면 벌떡벌떡 일어난다고 해서 점핑이라고 불린다. 카야가 집에 도착한 후 배에서 짐을 내리는데 사탕이 두 개 실려있다. 점핑은 아내에게
"어쩌면 저 아이는 죽을지도 몰라"
라고 말한다. 아내는 교회의 구호물품을 가져와서 카야를 도와준다.
편지를 주었지만 읽지 못하는 것을 본 '테이트'는 '카야'에게 글을 가르쳐준다. 가져오는 책들이 죄다 생태 관련 책들이다. 심지어는 카야는 첫 생리에 관해서도 테이트에게 배운다.
그렇게 카야의 모든 것이 되어버린 테이트와의 감정은 어느새 사랑으로 커져가고, 그렇게 사랑이 무르익어갈 즈음 테이트는 공부를 하러 떠나게 된다. 4년간 대학 공부를 하고 오겠다던 테이트는 7년이 되어도 돌아오지 않았고, 처음으로 카야는 가족에게서도 느끼지 않았던 인간에 대한 상실감에 격하게 몸부림친다.
| 이브의 순결
그녀는 다시 혼자가 되었다. 그 틈을 노려 마을에서는 혼자 사는 카야의 순결을 먼저 빼앗기 위한 남자들의 내기가 시작되었다.
매일 남자들에게서 도망치는 일에 지쳐버린 카야, 나약한 여자의 몸으로는 더 이상 버텨낼 수도 도망칠 곳도 없었다. 결국 카야는 머리가 텅텅 빈 부잣집 아들인 '체이스'의 의도를 알면서도 그를 받아주게 되고, 그렇게 마을 남자들의 사냥터는 문을 닫는다. 순결을 바쳐서라도 생존을 위해 그와의 결혼을 결심하는 카야. 체이스와 카야는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보는 연인이 되어간다.
카야는 배를 타고 나가 대학교에서 책을 빌려 읽곤 하는데, 카야의 수준 높은 책들과 박식함에 체이스는 그녀의 남다름을 느끼기도 한다.
어느 날은 카야가 체이스의 생일을 축하해주기 위해 케이크 재료를 사러 나갔다가 다른 여자와 다정하게 앉아있는 장면을 목격하고, 카야를 발견한 체이스는 진주 목걸이를 한 여자의 어깨에서 손을 내린다. 밖으로 흘러나온 카야의 시선은 신문에 실린 체이스의 결혼 기사로 향한다.
"우리 사이는 원래 이런 거야! 여태 그것도 몰랐어? 난 결혼한 뒤에도 지금처럼 너를 계속 만나러 올 거야!"
카야는 그를, 그리고 남자를 경멸했다. 모두 '섹스 도둑들'이라며 분개했다. 이제 만남을 정리하려는 카야에게 체이스는 끊임없이 찾아와 강간을 시도한다.
"넌 내 거야!"
소리치며 폭력으로 카야를 제압하는 날들은 계속 이어진다.
그러던 어느 날 조개를 캐고 있던 카야에게 또다시 체이스는 강간을 시도하고, 카야는 남아있는 온 힘을 다해서 저항을 하다 피를 흘리며 도망친다. 도망치는 장면을 목격한 낚시꾼들은 사건의 목격자가 된다. 바로 소설의 맨 처음 등장한 체이스 살인 사건의 목격자.
| 돌아온 첫사랑과 그녀의 엔딩
카야는 조개에 관해 쓴 첫 소설을 발간하고 5천만 달러를 받는다. 그리고 테이트가 돌아온다. 대학원 졸업 후 박사가 되어 돌아온 테이트는 카야에게 용서를 빈다. 그는 4년 뒤 카야를 데리고 오려고 했지만 도시 생활에 적응하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찾아올 수 없었다는 얘기를 전한다. 둘의 사랑이 다시 이어지며 순조롭던 삶도 잠시...
법정 싸움이 시작되었다.
체이스를 살해한 용의자 카야의 외로운 싸움. 검사는 의심 없이 카야를 범인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체이스가 죽던 그날, 카야는 다른 마을에 묵고 있었다는 알리바이가 생기고, 그곳은 단시간에 오고 갈 수 있는 여유가 없는 곳이었다.
그리고...
살 떨리는 반전에서 나는 전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습지는 늪이 아니다. 습지는 빛이다.
그 전율은 이글로 전할 수 없으니 직접 책으로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델리아 오언스 작가는 아프리카에서 7년간 야생동물을 관찰해서 논픽션 3편으로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가재는 외로움에 관한 책으로 고립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을 그리고 싶었다고 한다.
카야는 사람에게 기대를 걸었다 버림받고 사랑을 주었다 배신당하며 대자연의 동물처럼 혼자 서는 법을 배운다. 비로소 두려움 없이 사랑하고 사랑받는 법을 깨우친다. 하지만 외로움은 인간의 본성이 아니다. 사회적 약자, 소외 계급을 부당하게 격리하는 차별과 편견이 문제다. 카야의 고립은 사회적 정치적 불의의 소산이다. -역자
점잖은 여자나 아이들은 술집 안에 발도 들여놓지 못했지만 포장판매 창이 따로 나 있어서 길에서 핫도그와 네히콜라를 주문할 수 있었다. 유색인은 정문 출입은 물론 창밖에서도 음식을 살 수 없었다. 하퍼리의 '앵무새 죽이기'에서는 백인 일행은 코카콜라를, 멀리 떨어진 흑인 일행은 네히콜라를 마시는 것으로 묘사된다.
목숨이 걸린 궁지에 몰리면 사람은 무조건 생존 본능에 의존한다. 생존본능은 빠르고 공정하다. 온유한 유전자로 훨씬 강력하게 후세대로 물려 내려가는 생존본능은 언제나 필승의 패다. 윤리가 아니라 단순한 수학이다. 비둘기들도 자기네들끼리 싸울 때는 매와 다를 바 없다.
"카야 넌 이제 글을 읽을 수 있어 까막눈이던 시절로 다시는 돌아갈 수 없을 거야."
"단어가 이렇게 많은 의미를 품을 수 있는지 몰랐어. 문장이 이렇게 충만한 건지 몰랐어."
테이트는 미소를 지었다.
"아주 좋은 문장이라서 그래 모든 단어가 그렇게 많은 의미를 품고 있는 건 아니거든."
카야는 입을 굳게 다물고 있었다... 그러다가 사라져 버렸다 가재가 노래하는 곳은 저 숲 속 깊은 곳 야생 동물이 야생 동물답게 살고 있는 곳을 말한다. 그곳에서만이 카야는 카야 답게 살 수 있다.
"점핑 아저씨 세상이 어떤지 아시잖아요."
스스로를 스스로 지켜야 했다.
외부인들은 카야를 '마시걸'이라고 불렀다. 마시걸은 '늑대소녀. 습지 거지'라는 의미로 사람들이 카야를 깔보고 함부로 부르는 이름이었다.
그 끔찍한 관계에 대해 조언을 준 것도 자연이었다. 사회의 역할 인간적으로 살 수 있도록 보호해 주는 일, 엄마와 조디가 떠나고 처음으로 숨 쉴 때 아픔이 느껴지지 않았다.
사랑이란 차라리 씨도 뿌리지 않고 그냥 두는 게 나은 휴경지 인지도 모른다.
세상의 중심에서 벗어난 습지는 세상의 변두리 가난, 소외, 외로운 사람들이 존재하는 곳. 현대 문명사회에서도 정신적인 습지에 버려진 사람은 많다.
"난 한 번도 사람들을 미워하지 않았어. 사람들이 날 미워했어. 사람들이 나를 놀려댔어. 사람들이 나를 떠났어. 사람들이 나를 괴롭혔어. 사람들이 나를 습격했단 말이야."
"그래 그 말은 맞아. 난 사람들 없이 사는 법을 배웠어. 오빠 없이, 엄마 없이, 아무도 없이 사는 법을 배웠다고!"
여성의 독립, 계급과 인종, 자연과 인간의 관계, 진화적으로 바라본 인간의 본성, 과학과 시, 인간 존재에 대한 근본적 질문, 배신자에 대한 심판. 살기 위해 수컷을 잡아먹는 암컷, 부모 자식 간의 책임, 사회적 약자에 대한 왜곡된 시각. 윤리와 본능...
이렇게 작가는 우리에게 많은 질문을 던져 놓는다.
이 책의 매력은 인간성을 바라보는 융합 학문, 성, 가정 소설이었다가 로맨스였다가 막장이었다가 법정 스릴러로 시공간과 장르를 넘나드는 이 소설은 70년을 산 작가의 첫 소설이자 마지막 소설인 그의 모든 산물로 다가온다.
델리아 오언스... 델리아 오언스...
카야... 카야...
'카야'는 인도 산스크리트어로 '몸, 대지, 여자'를 상징하는 의미이기도 하다.
박경리 작가의 40대 등단을 대단하시다 여겼는데
이젠 70대 정도는 돼야 '글 좀 써볼까?'라고
말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드는
'내로라하다'의 델리아 오언스 작가와의 만남
'내는아직어리디어리군'이었습니다.
|
마음을 치유하는 다른 장편 소설 '종이 약국'도 만나보세요.
'♤ 리더의 품격 > 리더의 서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수많은 고민에 휩싸인 당신에게 답을 주는 신기한 책 '내 인생의 해답' (2) | 2020.02.11 |
---|---|
설날 선물은 '종이약국 서가'의 책선물을 추천합니다. (2) | 2020.01.07 |
주체적인 삶을 살지 않는 아이, 안녕하세요! 여기는 '내로라 동화 약국'입니다. (3) | 2019.12.13 |
'데미안' 2/2 (36분) (8) | 2019.12.02 |
'데미안' 1/2 (44분) (4) | 2019.12.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