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그에 대한 대가도 톡톡히 치러야 했다.
스스로 삶의 길을 열어가는 것이 아니라 길들여진 삶을 살았던 것이다.
삶을 주도적으로 개척하며 나아가지는 못했다. 그러다 보니 많은 사람들이 운명론에 휩싸였고 시대와 환경을 탓했다. 한때는 부당한 사회와 시스템에 저항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그렇지 못하다.
오늘 하루를 버티며 살기도 벅차다. 스스로 삶의 길을 생각하고 나가지 못한 결과이다.
_41의 나머지
그에 반해 일부 기득권층들은 '다른 교육'을 받았다.
그들은 길들여진 교육이 아닌 스스로 생각하며 삶의 길을 열어가는 인문고전 교육을 집중적으로 받았다. 또 인생의 문제를 해결하는 지혜를 키워나갔다. 즉 통찰력을 기르는 교육을 받은 것이다. 이렇게 현실을 직시하고 미래를 예측하며 자신들만의 성을 견고하게 쌓아갔다. 그때 쌓아 올린 성벽은 지금도 건재하다.
이제는 철옹성이 되어 어지간한 힘으로는 허물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부의 대물림, 개천에서 용 나지 않는 사회가 그것을 증명한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 성벽을 무너뜨리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당장 내 삶의 앞날을 헤쳐 나가기도 벅차기 때문이다. 먼 미래를 볼 수 있는 안목이 없는 것도 한몫한다. 그러기에 우리 스스로 인문정신으로 무장해야 한다.
대답만 잘하는 '착한 사람'이 아니라 현실을 명확하게 진단하고, 나아갈 길을 꿰뚫어 볼 수 있는 능력을 함양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인문학의 힘은 정답을 가르쳐주지 않는 것에 있다. 삶을 스스로 여는 길이나 일을 잘하는 방법, 당면한 인생의 어려움을 헤쳐 나갈 구체적인 방법을 직접 알려주지 않는다. 대신 인간 삶의 여러 부분을 보여주고, 스스로 생각하며 답을 찾아가도록 돕는다.
인간의 본성, 존재의 의미와 이유를 여러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해 준다. 기미를 포착할 능력을 기를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이다.
다양한 삶의 문제에 대한 질문을 던져주며 답을 찾아보라고 유도한다.
질문을 하려면 용기가 있어야 한다.
내면에서 일어나는 궁금증과 호기심을 해결하려면 도전이 필요하다. 무모한 도전까지도 말이다. 무엇보다도 궁금한 것을 누군가에게 질문해야 한다. 때로는 황당하거나 엉뚱하다는 소리를 들을 수도 있다. 이치에 어긋날 수도 있는 것들에 굴하지 않아야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의문을 지나쳐서는 곤란하다.
관심이 곧 질문이다. 그러므로 자기 삶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 순간 더 나은 미래는 보장받을 수 없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에 맞서 레지스탕스resistantialisme 활동을 했던 스테판 에셀Stephane Hessel은 이렇게 말했다.
"무관심이야말로 최악의 태도다. 분노해야 할 일에 분노하지 않는 것만큼 나쁜 일은 없다."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요소에 분노하며 레지스탕스 운동을 한 그가 '다시 분노하라'고 말한다.
민주주의가 위협받고, 인권이 무시되는 상황에서는 분노할 수 있어야 한단다.
그래야 사회와 삶을 '좋은 쪽'으로 발전시킬 수 있단다.
인문정신으로 무장하는 밑바탕은 의문이다. 그 의문에서 통찰력이 생긴다. 독일의 대문호 괴테 j.w. Goethe의 말을 들어보자.
"의문은 언제까지나 의문 수준에 머물러 있지는 않아. 의문은 정신을 자극하여 더욱 상세한 연구와 시험을 하도록 하고, 이것이 완전한 방식으로 이루어지면 우리는 거기에서 확신을 하게 되지. 바로 이것이 목표이며, 여기서 인간은 완전한 만족감을 찾아내게 되네. 통찰력을 얻었다고 할 수 있지. 우리가 의문을 통해 끌어낼 수 있는 최고의 수확이 바로 그것이야." _44
그렇다면 자기 스스로 '나다움'을 발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가장 쉽게 접근해볼 수 있는 것은 '나만의 버킷리스트Bucket list'를 만드는 것이다. 무엇이든 좋다. 내가 해보고 싶고, 원하는 것들을 모두 작성해본다. 진짜 내가 경험해보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글로 적으며 찾아보는 것이다.
이미 경험한 것들도 적어보며 데이터를 분석해보자. 나답게 살아왔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무엇을 할 때 나의 존재감이 느껴졌는지, 행복한 감정을 느낀 것들은 무엇이었는지, 인생의 의미와 보람은 어디서 얻었는지, 그렇게 지나온 삶과 앞으로 살아갈 날들에 대한 리스트를 정리하며 조금이라도 궁금하고, 해보고 싶은 것들을 찾아보는 것이다. 그런 일련의 과정에서 나다움을 발견할 수 있고, 나답게 살아가게 된다. _64
결과적으로 돈이 많으면 사람들은 부러운 눈으로 바라본다. 하고 싶은 일을 제약 없이 할 수도 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버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하지만 돈을 소유하기 위해 욕망을 불태우는 것이 과연 우리가 지향해야 하는 삶의 목표일지는 따져보아야 한다.
인간 심연深淵에 숨겨져 있는 본능과 존재의 의미에 대해 영국의 극작가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만큼 적나라하게 파헤친 작가는 드물다. 그의 작품 속에는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화두가 숨겨져 있다. 특히 불후의 작품으로 불리는 4대 비극인 <햄릿>, <오셀로>, <리어왕>, <멕베스>는 인생의 의미를 깨우치게 만든다. 비극에는 양심적인 삶보다는 권력과 돈, 지위를 얻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모습이 담겨있다. 그렇게 산 인생의 최후는 비극이었다.
비극적인 결말 속에서 셰익스피어는 어떻게 사는 것이 성공적인 삶인지를 독자들에게 묻는다.
아니 '스스로 생각하라'고 단서를 제공한다. ... 햄릿은 일그러진 욕망에 사로잡힌 이들을 바로잡기 위한 싸움을 시작한다. 자신이 선택한 길을 이렇게 외치며 나아간다.
"이 시대는 온통 어그러져 있어! 오 저주받은 운명이여! 내 그것을 바로 잡을 운명을 지고 태어났나니!"
거대한 권력 앞에서 죽음을 각오하며 그는 외로운 싸움을 이어간다. 그런 고뇌는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라는 독백으로 이어진다. 삶의 갈등은 스스로 질문을 하게 만든다고 했던 것처럼 햄릿은 질문을 던진다.
"인간의 존재 의미는 무엇인가?"
"삶과 죽음과 사랑이란 무엇인가?"
답을 찾기 위해 위험 속으로 들어간 그는 장렬한 최후를 맞는다. 그 과정에서 햄릿은 우리에게 진정한 삶의 지향점이 무엇인지 말한다. '진실을 추구하며 사는 것'이 가치 있는 삶이라고 말이다.
공자孔子도 진실함의 중요성에 대해 <논어> <자장편>에서 이렇게 밝힌다.
자장이 물었다.
"선비가 어떠하여야 통달한 사람이라 이를 수 있습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무엇인가? 네가 말하는 통달한 사람이란 것이."
자장이 대답하였다.
"나라에 있어도 반드시 소문이 나며, 집안에 있어도 반드시 소문이 나는 것입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그것은 소문난 사람이지 통달한 사람이 아니다. 통달한 사람이란 질박*하며 정직하고 의를 좋아하며, 남의 말을 살피고 얼굴빛을 보아 생각해서 몸을 낮추는 것이니, 나라에 있어서도 반드시 통달하며, 집안에 있어서도 반드시 통달하게 되는 것이다. 소문난 사람이란 얼굴빛은 인을 취하나 행실은 위배되며 자처하여 의심하지 않아야 한다." _68
소유의 삶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소유보다 존재에 의미를 두는 것이다.
에리히 프롬Erich Fromm은 존재적 삶의 가치에 더 의미를 두고 살라고 조언한다. 소유에 지향점을 두면 탐욕에 휩싸일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존재가 소유에 의해서 규정되는 삶에서 아무것도 소유하지 못한 사람은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여겨지게 되는 것이다."
프롬의 이야기를 들으면 우리 사회에서 자살이 끝없이 이어지는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소유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하면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될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자기 존재가 부인당하는 것만큼 비관적인 것은 없다. 그래서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
"소유는 사용에 의해 감소될 수밖에 없는 것들을 바탕에 두고 있다. 하지만 지적 창조력이나 이성, 사랑 같은 존재적 가치는 실행하면 실행할수록 증대된다."_71
방향성을 잃고 속도에만 휘둘리는 사람들에게는 <대학大學>에서 전하는 메시지가 있다.
고요한 뒤에야 능히 안정이 되며, 靜而後能安.정이후능안
안정이 된 뒤에야 능히 생각할 수 있고, 安而後能慮.안이후능려
깊이 사색한 뒤에야 능히 얻을 수 있다 慮而後能得.려이후능득
우리 인생은 빨리 달리는 경주가 아니다.
더디 가더라도 자신이 가고 있는 길이 올바른 방향이라면 괜찮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나이가 들어서 자신이 나아갈 방향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올리기도 한다. 세상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할 만한 업적도 쌓았다. 그러니 방향만 올바르다면 속도는 문제가 안 되니 근심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_77
누군가에게 약점이 잡힐 만한 삶을 살면 바른말을 하지 못한다.
돈과 명예와 자리에 연연해도 자기 주관을 내세울 수 없다. 공자는 <논어>의 <안연편>에서 올곧은 삶에 대해 좀 더 깊이 말하고 있다.
번지가 인(仁)에 대하여 여쭙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다."
앎(知)에 대하여 여쭙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사람을 아는 것이다."
번지가 잘 알아듣지 못하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올곧은 사람을 등용하여 굽은 사람 위에 두면, 굽은 사람을 올곧게 만들 수 있다."
올곧은 삶은 사람을 사랑하는 데서 비롯된다.
그러려면 사람에 대해 알아야 한다. 사람의 근원과 본성, 존재의 의미까지 알아야 한다. 그런 마음으로 배워야 한다.
<논어>의 <위정편>에 나오는 말이다.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갈피를 잡을 수 없고, 생각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태롭다." _91
미국의 사상가 겸 문학가인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사색하며 살기 위해 도시를 떠나 숲으로 들어갔다. 그의 저서 <월든>에서 그는 자신이 숲으로 들어간 이유를 이렇게 밝힌다.
"내가 숲으로 들어간 것은 인생을 의도적으로 살아보기 위해서였다. 다시 말해서 인생의 본질적인 사실들만 직면해보려는 것이었으며, 인생이 가르치는 바를 내가 배울 수 있는지 알아보고자 했던 것이며, 그리하여 마침내 죽음을 맞이했을 때 내가 헛된 삶을 살았구나 하고 깨닫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소로의 첫 저서로 깊은 철학적 사색을 담고 있는 <소로우의 강>에서는 하루를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 말해준다.
"적어도 하루에 한 번은 삶의 길을 스스로 헤쳐 나갈 수 있어야 한다. 하루가 온종일 대낮일 필요는 없으나, 하루가 저절로 싹 틔울 수 없는 시간이 적어도 하루에 한 시간씩은 있어야 한다."
<성격>의 지혜서로 불리는 <잠언>에 나오는 말이다.
"문짝이 돌쩌귀를 따라서 도는 것같이 게으른 자는 침상에서 도느니라." -<잠언>26장 14절
게으른 사람은 문이 돌쩌귀를 중심으로 움직이듯이 침대를 중심으로 움직인다는 말이다.
의미를 추구하거나 생산적인 것에 집중하지 않고 그저 침대 주변만 맴돈단다.
게으른 사람의 특징은 삶에 열정을 쏟아붓거나 시간을 투자해 뭔가를 이루어 내려는 목표가 없다.
그들과 대화를 해보면 나름대로 꿈을 가지고 있다고 항변한다. 하고 싶고, 이루고 싶은 소망을 품고 있다. 하지만 좀 더 대화를 이어가다 보면 그들의 소망은 그저 희망 사항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원하는 것은 있지만, 그것을 이루어내기 위한 노력과 의지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이루고 싶은 소망은 있지만, 자신을 불태울 생각은 없다.
자신의 모습을 조금 더 나은 모습으로 바꾸려면 희생이 필요하다.
뭔가 이루어질 때까지 절제하고 인내하는 모습도 요구한다. 하지만 게으른 사람은 그런 절제와 인내, 희생을 싫어한다. 그러다 보니 삶의 변화가 일어나지 않고 돌쩌귀처럼 게으른 삶으로 회귀하고 만다.
게으른 사람은 자기 합리화의 대가이다.
그들이 포기하는 일에는 언제나 그에 합당한 이유가 있다. <이솝우화>에 나오는 여우가 따 먹지 못한 포도를 신포도라고 한 것이 바로 합리화라고 하겠다. 원하는 목표를 이룰만한 열정과 간절함이 없기에 쉽게 포기하며 자신을 합리화한다.
침대 주변을 맴돌지 않고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람들 중에도 게으른 사람이 있다. 그들은 뭔가 바쁘게 움직인 것 같지만 정해진 일과 속에서 습관적으로 움직일 뿐이다. 돌쩌귀가 바쁘게 열리고 닫히는 것을 쉴 새 없이 반복한 것처럼 말이다. 생각 없이 반복적으로 움직이는 삶도 어쩌면 게으른 삶과 다를 바 없다. _98
'기회의 신'이라 불리는 카이로스Kairos의 모습은 괴이하다. 이마 위로는 무성한 곱슬머리가 자랐지만, 뒤통수는 대머리다. 양다리에는 날개가 달려있고, 한 손에는 저울을 다른 손에는 칼을 들고 있는 모습이다. ... _104의 앞
그동안 우리가 놓치고 살았던 '판도라의 상자'는 바로 사람을 사랑하고, 사람을 이해하는 인문을 통해 자신을 들여다보는 것입니다. 절제와 인내로 내 삶의 방향성을 놓치지 않고 묵묵히 나아가는 것입니다. 이제부터라도 지혜를 기르고 삶의 통찰력을 기르는 교육이 필요합니다. 선생님이 설명해 주시면 "네 알겠습니다."라고 답했던 착한 학생이 되면 안 됩니다.
왜?라고 근원적인 통찰의 질문을 해야 합니다. 자칫 우둔해 보일 수도 있는 질문을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요즘 전국적으로 하나둘 생기고 있는 '지혜'의 도서관들이 있습니다. 그 도서관들은 시끄럽습니다. 왜냐하면 책을 읽으면서 자유롭게 대화하고 토론할 수 있는 열린 도서관이기 때문입니다. 마치 유태인들의 도서관 같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유태인은 전 세계 0.25%의 인구로 25%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 민족이자 30%의 아이비리그 재학생을 둔 민족입니다. 스티븐 스필버그, 아인슈타인, 프로이트를 비롯해 구글, 페이스북, 델, 리먼 등의 세계적인 글로벌 기업을 운영하는 대표들도 유태인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실물 화폐도 없이 지급 준비율만 만족하면 돈을 빌려주는 은행 시스템을 만든 것도 그들입니다.
많은 나라들이 전 세계에서 지능이 45위 정도밖에 되지 않는 유태인들을 이길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건 바로 유태인의 정신을 지배하는 탈무드라는 교재에 담긴 지식과 가정교육, 그리고 하브루타라는 교육방식을 따라잡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왜?'라는 질문을 수없이 던지면서 끊임없이 묻고 답하며 상대의 생각과 서로를 알아갑니다.
드디어 우리는 무엇을 공부해야 하는지 알게 됐습니다. 이제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부의 대물림, 개천에서 용 나지 않는 사회'를 만든 그들이 하는 교육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놓치고 살았던 '판도라의 상자'입니다. 계속 열어가시겠습니까?
오늘의 낱말은 '질박하다1'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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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박하다1 (質樸--/質朴--) [질바카다] 바탕 질, 순박할 박 / 바탕 질, 성씨 박
[형용사]
1. 꾸민 데가 없이 수수하다.
2. [북한어] 고지식하고 둔하며 미련하다.
[유의어] 수수하다2, 순박하다, 소박하다1 -
질박하다2
[형용사] [북한어] ‘질바닥하다(진흙이나 반죽 따위가 물기가 많아 조금 성가시게 질다)’의 준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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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사] [북한어] ‘질바닥질바닥하다(진흙이나 반죽 따위가 물기가 많아 꽤 성가시게 진 느...)’의 준말.
[형용사] [북한어] ‘질바닥질바닥하다(진흙이나 반죽 따위가 물기가 많아 꽤 성가시게 질다)’의 준말. -
질박1 (跌撲)
[명사] <한의학> 넘어지거나 부딪혀서 상처가 생긴 것. 피부가 약간 상하고 멍이 들어서 속에 어혈(瘀血)이 생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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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사] [북한어] ‘질바닥질바닥(진흙이나 반죽 따위가 물기가 많아 꽤 성가시게 진 느낌)’의 준말.
영어사전 단어·숙어1-5 / 5건
질박하다 (質樸/質朴하다)(be) simple (and unadorned), plain, simple and honest, homely, unsophisticated질박한 미풍a laudable habit of simplicity질박한 풍습simple manners질박 (質樸·質朴)1. simplicity; unsophisticatedness.
2. 질박하다 simple and unadorned; simple (and honest); simple-hearted ; unsophisticated.질박한 촌사람a simple[simpleminded] villager
일본어사전 단어1-1 / 1건
질박하다 (質樸―·質朴―)[형용사] 質朴しつぼくだ; 素朴そぼくだ.
중국어사전 단어1-1 / 1건
질박하다 (質樸-・質朴-)[형용사] 质朴 (zhìpǔ)。
지급 준비율
reserve requirement ratio , 支給準備率
어떤 은행의 전체 예금 잔액에 대한 지급 준비금의 비율.
금융 기관의 예금자에 대한 지불 능력을 확보하기 위해 중앙은행에 예금의 일부를 의무적으로 예입하도록 하는 제도가 '지급 준비 적립금 제도'이며, 예입 금액은 예금 잔고의 일정 비율인 준비율에 따라 결정되는데, 이것을 지급 준비금이라고 한다. 이같은 지급 준비금은 은행이 그 업무상 항상 예금자의 예금을 지급할 수 있을 정도의 현금 또는 이에 준하는 자금을 보유해야 할 필요성에 기인한다. 그러나 평상시의 지급 준비금은 예입되어 있는 예금 전체를 지불할 만큼 많이 보유하고 있을 필요는 없다. 따라서 예금액의 일정 비율만 지급 준비금으로 보유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그 비율인 예금 지급 준비율을 조정하는 지급 준비율 정책은 금리 정책 및 공개 시장 조작 정책과 함께 금융 정책의 3대 기본 정책 중의 하나로 매우 중요한 금융 통제의 수단이 된다. 한국에서의 은행법은 금융통화위원회가 금융 기관이 유지해야 할 최저 예금 지급 준비율을 정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다음. 백과사전>
현재 적용되고 있는 예금지급준비율은 2년 이상 만기 정기예금이나 정기적금은 8%, 근로자재산형성저축·주택마련저축·근로자장기저축·상호부금저축·주택부금저축 등은 3%, 그 외의 예금에 대해서는 11.5%이며 금융기관은 지급준비금 중 25%까지는 한국 은행권으로 보유할 수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지급준비율 정책 [支給準備率 政策, reserve requirements ratio policy] (NEW 경제용어사전, 2006. 4. 7., 미래와경영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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