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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더의 품격/예술의 경계

김환기·이중섭· 박수근 화백. 그들은 한국 화가 중 가장 몸값이 비싼 화가입니다. 세 분의 가장 비싼 그림 열 점을 감상해 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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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섭

 1916년 9월 16일, 평안남도 평원군 조운면 송천리에서 출생하였고, 어린 시절 아버지가 작고하신 후 외가인 평안남도 평양에서 성장하였습니다. 외조부는 평양 내에서 손꼽히는 부자로 사업이 아주 번창하여, 어릴 때부터 어려움은 전혀 모르고 편안한 유년 시절을 보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평안북도 정주의 오산학교(五山學校)에(고등과정) 입학하여 서양화가인 임용련으로부터 미술 교육을 받아 본격적으로 미술의 세계에 입문하게 됩니다. 이중섭은 일본에서 개최되는 미술전에 작품을 제출하게 되는데 오산학교 시절 민족교육의 영향을 크게 받아, 작품의 주제를 황소로 잡고 황소를 소묘하는 작품으로 참가하게 됩니다. 당시 황소는 한국의 민족정서를 대표하는 동물이라 소에 관련된 표현을 못하게 하는 분위기였는데, 그는 보란듯이 작품을 그려내는 강단이 있었습니다. 

 첫 작품을 전시할 때는 비교적 그림 크기를 크게 그려 내는 기조를 알면서도 손바닥만한 작은 크기에 강렬한 눈빛을 가진 소를 그린 그림을 본 일본의 한 기자는 이중섭의 천재성을 바로 알아보고 감탄했다고 합니다. 특히 소 그림의 낙관에 '중섭'이 아닌 '둥섭'이라고 씌어 있는 걸 확인할 수 있는데 이는 당시 친일파로 변절한 조선인 문학가가 조선총독부의 기관지인 《매일신보》에 게재한 〈머리를 중처럼 밀고 전쟁에 참가하는 아름다운 청년이 되자〉라는 논조의 사설을 보고 중섭의 본인 이름에 발음이 같은 중자도 부르기 싫고 부끄러운 일이라며 분노하여 낙관의 이름을 '중'에서 '둥'으로 바꿉니다. 

 1936년 일본 도쿄 데이코쿠 미술 학교(현재의 무사시노 미술대학)에 입학했지만 마음에 들어하지 않아, 1937년 자유롭고 혁신적인 분위기의 학풍을 중시하는 도쿄 분카 학원(문화학원)으로 옮겨서 공부합니다. 그곳에서 평생의 연인인 마사코를 만나게 됩니다. 1941년에는 일본 도쿄에서 유학 생활을 하던 조선인 화가인 이쾌대, 진환, 최재덕 등과 함께 조선신미술가협회(朝鮮新美術家協會)를 결성했고, 1943년에는 자유미술가협회 특별상 태양상을 수상합니다. 

 1945년 고향에 돌아온 뒤 5월에 원산에서 연인이었던 이남덕{李南德, 본명 야마모토 마사코(山本方子)과 결혼합니다. 아름다운 5월의 신부가 되셨네요.^^ 



 1946년에는 원산사범학교의 미술교사로 근무했지만 1주일 만에 사직했습니다. 같은 해에는 그의 친구인 구상 등이 펴낸 시집 《응향》(凝香)의 표지 제작을 맡았지만 《응향》이 퇴폐적, 반인민적, 반동주의적인 작품으로 규정된 필화 사건인 응향 사건에 연루되기도 합니다. 

 1950년 한국 전쟁 때 월남해서 경상남도 부산, 통영, 제주도 등을 다니면서 살게됩니다. 통영에서 지낼 때 이중섭은 학교에서 학생을 가르치며 힘든 일생 중 그나마 가장 편안하고 가족들을 한국으로 데려올 수 있다는 희망적인 생각을 가진 시기였습니다. 통영에는 그의 흔적이 남아있지요.

 가족들이 떠난 이유는 그림 재료를 살 돈이 없어서 담뱃갑의 은박지에 그림을 그릴 정도로 극심한 어려움에 시달렸는데, 결국 1952년 부인은 두 아들을 데리고 일본으로 가게됩니다. 가족이 너무나도 그리웠던 그는 1953년 평생에 딱 한 번 부두 노동으로 번 돈을 털어 일본을 다녀옵니다. 그러나 선원증을 갖고 있던 이중섭은 일본에 오래 체류할 수 없었기 때문에 1주일 만에 대한민국으로 귀환합니다.

 부산, 대구, 통영, 진주, 서울 등을 떠돌며 가난 속에서도 창작에 매달리던 그는 결국 1956년 9월 6일 40대의 젊은 나이에 숨을 거둡니다. 새하얀 병실에서 아이들의 노는 모습을 상상하면서 그렸던 아이들의 그림들이 아래에 있습니다. 종이가 없어서 정말 자그마한 그림들이지요. 그의 화풍이기도 하겠지만 아이들의 형체가 점점 흐려지는 것은 아마도 헤어진 시간이 길었던 탓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의 그림을 사러간 어느날 그는 고작 작은 그림 한 점을 팔면서도 뭐가 그리 죄송한지 다시 나중에 잘 그려서 바꿔드리겠다며 머릴 숙이던 그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사랑하는 가족과 헤어지고 평생을 가난하게 살았던 그에게 이딴 억대급의 그림이 이제와 보상이 될진 모르겠지만, 화가의 죽음과 사연을 기다리는 분들이 있다면 그러지 마시고 현재 열심히 작업하시는 젊은 작가분들의 그림들도 많이 구입해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위키 백과 일부 인용 및 사실에 기반한 각색된 이야기가 있습니다. 기타 사진 및 그림의 출처는 맨 하단에 있습니다. 문제의 소지가 있는 작품이 있다면 댓글 주시기 바랍니다.)

 

1. 소 47억

어릴적 이중섭은 혼자서 소를 관찰하는 일을 좋아했습니다. 28.2cm x 45.3cm 라는 작은 그림의 크기를 생각한다면 김환기 작품가보다 훨씬 높은 가격대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2. 싸우는 소 14.5억

우습기도 하고 난해해 보이기도 하지만 거친 선들이 그 어떤 그림보다 역동적으로 느껴집니다. 종이에 에나멜로 27.5cm x 39.6cm 입니다.

 

3. 호박꽃 13.5억

유채입니다. 62x98. 색감이 따스하고 편안해 보입니다. 아이들을 만나고 온 뒤라 그의 행복한 모습이 반영된 듯한 그림입니다. 

 

4. 아버지와 장난치는 두 아들 5.5억

유채, 31x48.5 힘든 부두생활을 하면서 이렇게 아이들과 놀아줄 상상을 하면서 이겨내고 있습니다. 아이들과 만나기 직전에 그린 그림으로 추측합니다. 

 

5. 무제(양면화) 3.8억

흰닭을 잡는 즐거운 모습
이야 한 마리 잡았군요. 켄타우로스가 뱀과 싸우는 장면도 보입니다. 마치 가난이라는 뱀과 싸우는 켄타우로스는 작가 자신 같네요. 켄타우로스의 평균 수명이 40인데 그도 40에 운명을 달리 했으니 말입니다. 

 

6. 돌아오지 않는 강 3억

끝내 돌아오지 못할 가족들이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립니다. 그가 작고한 해의 그림입니다.

 

7. 노란 태양과 가족 3억

14.5x13.5 이중 가장 작은 그림입니다. 손바닥만하죠. 해는 따뜻하고 아이들도 붉은데 왜 배경은 차갑게 그렸을까요?

 

8. 큰 게와 아이들 / 달과 게(양면화) 2.6억

제주도, 통영의 바다에서 그린 그림 같죠? 
곧 가족을 볼 수 있을 것 같은 행복한 색감이 느껴집니다. 이작품을 그릴 즈음 그는 일본을 다녀왔으니까요.

 

9. 두 아이와 비둘기 2.5억

와 아이들이 부쩍 자랐네요. 

 

10. 사계 2.1억

누가 사계를 이렇게 천재적으로 표현해낼 수 있단 말입니까? 잎과 나비와 감과 눈이면 완벽해집니다.

 

어떤가요? 

이중섭 화가의 예술가적 고뇌가 느껴지시나요? 아니면 우리네 아버지의 삶처럼 따스하고 고단하게 느껴지시나요? 

 

박수근

 1914년 2월 21일, 강원도 양구군 양구면(현 양구읍) 정림리의 찢어지게 가난한 집에서 태어납니다. 가난은 그에게 좋은 미술 교육을 제공하지 않았고 미술 재료도 구하기 힘들었습니다. 가난으로 중학교에 진학도 못 했으니 2살 아래의 이중섭 작가의 어린시절과는 참 대조적입니다. 그는 강원도 양구보통학교를 졸업한 후 강원도 인제군에서 독학으로 미술 공부를 하였고, 유일한 대회인 1932년 제11회 조선 미술 전람회에 입선함으로써 화단에 등장하게 됩니다.

 해방 후 월남하여 1952년 제2회 국전에서 특선, 미술협회전람회에서 입상하였고, 1958년 이후 미국 월드 하우스 화랑·조선일보사 초대전·마닐라 국제전 등에 출품하는 등 국내외 미술전에 여러 차례 참가합니다. 1959년에 제8회 국전 추천 작가가 되었고, 제11회 국전에서는 심사위원이 되었습니다. 그는 회백색을 주로 하여 단조로우면서도 한국적 주제를 소박한 서민적 감각으로 충실하게 다루었고, 한국인 화가 중 가장 독창적이면서도 평범한 한국의 서민상을 주제로 삼았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캔버스 대신 종이 위에 아주 작은 작품을 그리면서 자신의 예술적 의지와 혼을 담아냈는데, 당시에는 크게 주목 받지 못했던 그의 소품들은 날이 갈수록 제 빛을 발하여 오늘날에는 마치 지난 시절 잃어버린 보석처럼 빛나면서 한국인들은 그를 ‘우리의 화가’, ‘국민화가’로 칭송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국민화가로 불리는 박수근의 이력서는 아주 초라합니다. 왜냐하면 그는 평생 개인전 한번 열어보지 못하고 1965년 5월 6일, 51세에 세상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그는 지방 도시로 내려가 부두노동자를 하기도 하였고 미군 PX에서 미군 병사들이 기념품으로 만들어가는 ‘손수건 위의 초상화’를 그리면서 생계를 유지하였다. 당시 그의 삶은 한국의 유명한 소설가 박완서가 <벌거벗은 나무>라는 소설에 생생하게 묘사한 것이 있다.

 한국전쟁이 끝난 이후 박수근에게는 아무런 일거리가 없었다. 그는 도시 빈민에 불과했다. 그의 유일한 수입원은 반도호텔 내에 있는 당시 유일한 갤러리인 반도화랑에서 이따금 팔아준 그림 값이 전부였다. 당시 그의 그림 값은 30 달러 정도였고 한국의 국민소득은 개인당 70달러였다. 미술품 거래라는 것이 거의 없던 시절이었지만 그래도 박수근의 작품은 특히 외국인들이 좋아하여 간간히 팔리곤 했다고 한다. 그의 작품은 소품인데다 값이 저렴하였고 무엇보다도 한국적인 서정이 물씬 풍겼기 때문이었다.

 그런 외국인 중에 주한 미국 외교관의 부인인 마가렛 밀러 여사는 박수근의 열렬한 팬이었다. 그녀는 박수근의 그림을 수십 점 소장하였고 다른 외교관 부인들과 함께 아뜰리에 탐방 프로그램을 만들어 그의 낡고 허름한 집을 방문하기도 하였다. 그녀는 귀국 후에도 편지로 박수근의 그림을 구입해 주었다. 이렇게 그녀가 미국에서 작품을 구입해 주면 박수근은 그림 값 대신 그림물감을 사서 보내 줄 것을 부탁하곤 하였다. 지금 그의 고향인 양구의 박수근미술관에 소장된 밀러 여사의 편지를 보면 가난한 화가의 그림에 대한 열정이 애틋하게 남아 있다.

 1953년, 한국전쟁이 끝나고 다시 열리기 시작한 국가 공모전에 출품하여 <우물가>가 특선되고 <노상에서>가 입선을 하면서 화가로서 인정받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듬해에는 <절구질하는 여인>이 입선되고, 그 이듬해에는 <두 여인>이 국회 문공위원장 상을 수상하는 등 화가로서 확고한 지위를 다져갔다.

 그러나 1957년, 43세 때 모처럼 1백호의 대작을 그려 출품한 것이 낙선되자 크게 실망하고 슬픔에 빠지기도 했다. 이때부터 그는 폭음하는 버릇이 생겼다고 한다. 오늘의 시점에서는 이해되기 쉽지 않지만 당시만 해도 국전을 통한 미술활동이 화가 이력의 전부였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박수근의 상심은 그렇게 컸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좌절하지 않고 국전 출품을 포기하고 그림에 열중하였다. 그리하여 1960년에는 추천작가로 초대되었고 62년에는 심사위원을 맡으면서 화단에서 명예를 회복했다.

 그는 일하는 여인의 모습을 즐겨 그렸다. <광주리를 이고 가는 여인>, <빨래하는 여인>, <장터의 여인>, <절구질하는 여인>. 박수근은 또 아이들의 천진스런 모습도 즐겨 그렸다. <동생을 업고 있는 언니>, <독서하는 소녀>. 그러나 그는 남자를 그릴 때면 늘 <쉬고 있는 남자>를 그리곤 했다. 사실 이런 대상들은 그가 살아가면서 늘상 대하던 도회지 풍경들이었다.

 박수근은 이런 서민들의 일상적 모습(everybody's everyday life)을 어떤 누구와도 다른 형식으로 표현하였다. 그것은 사실주의도 낭만주의도 인상주의도 표현주의도 아닌 박수근만의 형식이었다. 그는 자신이 선택한 대상들이 어떤 식으로든 변형되는 것을 거부하였다. 그는 그 인물들이 있는 그대로 화면 속에 고착되어 있기를 원했다. 그것은 존재에 대한 긍정이고 애정이다. 이를 위하여 그는 화면을 아주 두텁고 거친 마티엘 기법을 창출하였다. 그의 그림에 나오는 대상들은 한결같이 이 거친 마티엘 속에 가늘고 굵은 검은 선으로 새겨져 있다. 그리하여 그가 묘사한 인물들은 화면 속에 고착되어 있는 암각화 같은 느낌을 준다.

 박수근 예술의 열렬한 지지자였던 밀러 여사는 귀국 후 그의 예술세계를 널리 알리기 위하여 1965년에 한 잡지에 <조용한 아침의 나라 화가, 박수근>이라는 글을 쓴 적이 있다. 이 글에서 그녀는 박수근이 어떻게 이 두터운 마티엘 효과를 나타냈는지를 화가에게 직접 들은 대로 다음과 같이 증언했다. “나는 그림제작에 있어서 붓과 나이프를 함께 사용한다. 캔버스 위의 첫 번째 층을 충분히 기름에 섞은 흰색과 담황갈색으로 바르고 이것을 말린다. 그 다음에 틈 사이사이의 각 층을 말리면서 층 위에 층을 만든 것이다. 맨 위의 표면은 물감을 섞은 매우 적은 양의 기름을 사용한다. 이런 식으로 해서 그것은 갈라지거나 깨지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나서 나는 과감하게 검은 윤곽선을 이용하여 대상을 스케치 넣는다.” 이것이 박수근의 독특한 조형어법이고 서양의 어느 화가에게서도 볼 수 없는 개성으로 되었다.

 이 마티엘 기법을 통하여 그가 얻어낸 예술적 효과는 마치 한국의 산천에 즐비한 화강암 암벽에 새겨져 있는 마애불처럼 그 대상이 영원히 변하지 않고 거기에 존재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다. 다만 거기에 묘사된 대상이 부처가 아니라 정직하고 순박하고 꾸밈없이 살아가는 서민의 모습이라는 점이 다를 뿐이다. 박수근은 겨울나무도 즐겨 그렸다. 그 나무 또한 특별한 아름다운 형태를 가진 것이 아니라 한국의 산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하고 전형적인 -인물로 치면 서민적인- 나무이다. 그리고 잎이 다 떨어져 앙상한 나뭇가지를 드러내면서 새 봄을 기다리는 벌거벗은 나무들이다. 이 또한 그의 인물화에서 보여준 예술적 내용과 다르지 않다. 즉 현재의 삶은 힘들어도 묵묵히 견디면서 희망을 잃지 않은 그런 나무의 모습을 담아낸 것이다.

 지난 1세기 동안 한국 화가들이 서양미술의 기법과 정신을 맹목적으로 모방한 것은 아니었다. 이 새로운 조형어법을 익히면서 서양미술사에서는 볼 수 없는 아주 독창적이고 감동적인 그림 세계를 이룩한 화가도 적지 않다. 그 중 대표적인 화가가 박수근이며 한국인들은 우리 현대미술에서 이런 훌륭한 화가를 갖고 있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박수근이 이룩한 예술적 성과를 서양미술사의 흐름에서 어느 사조에 해당하는가를 따져 본다는 것은 넌센스이다. 그는 시대사조의 경향에 개의치 않고 오직 자신이 독창적인 그림 세계를 실현해 갔을 뿐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서양 사조를 열심히 따랐던 동시대 다른 화가들과는 달리 가장 독창적이고 가장 한국적인 화가로 될 수 있었던 것이다. 독일의 문학가 괴테가 일찍이 말했던 유명한 정의, “가장 민족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 될 수 있다.”라고 한 것은 박수근의 예술에 가장 잘 들어맞는 말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의 국민화가 유홍준(미술평론가/명지대 교수)의 평론 내용 중 일부입니다.>

 정식 미술교육을 받지 않은 마티에르(흙 느낌의 두꺼운 질감)의 독보적 화풍을 만든 '박수근'은 앤디 워홀에 견줄 수 있을만한 화가로 그를 빼놓고 한국의 5~60년대를 말할 수 없습니다.

 

40세에 등단한 박완서 작가의 처녀작 '나목', 그리고 박수근 화백의 그림

 

박완서의 [나목]

「나목」은 작가 박완서의 처녀작이며 자전적 소설이다. 제목을 통해 추운 겨울 황량한 벌판에 우뚝 선 벌거벗은 나무처럼 지난하고 참담한 시대를 살아가지만 고목이 아니기에 언젠가 반드시 싹이 돋고 잎이 날 거란 희망의 메시지를 감지할 수 있었다.작품은 작가의 체험적 삶을 바탕으로 당시 역사적 사회적 환경이 개인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전쟁의 공포가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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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앉아있는 소녀 19억5,923만

아주 거친 화풍 독보적인 마티에르입니다. 투박한 화풍에 고요히 앉아있는 소녀가 신선합니다.

 

2. 목련 16억 4,530만 5천

목련의 아름다움 조차 투박함 속에 존재하는군요.

 

3. Under Trees 10억 5천만

나무 아래에서 열심히 밭을 일구고 있네요. 가장 한국적인 그림을 한국인이 무시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4. 아이 업은 소녀 9.5억

참 평면적이고 어설퍼 보이는 데도 저리 정겨울까요.

 

5. 모자 8.3억

보기 드물게 얼굴 표정이 여실히 드러나는 작품입니다. 그시절에는 어머니의 젖가슴보다 버선발에 드러난 발목이 더 야릇하던 시절이었습니다.

 

6. 나무와 두 여인 8억

우리네 어머니들의 고단함이 앙상한 가지와 어우러져 느껴집니다.

 

7. 고목과 아이들 7억 2,936만

어딜 가자고 조르는 걸까요? 손끝과 얼굴을 보니 뭔가 재미난 게 보이나 봅니다.^^

 

8. 귀로 6.8억

신작로를 따라 늘어선 아낙네들의 귀갓길 모습입니다. 오늘도 하루가 저물었군요.

 

9. 앉아있는 여인 5.8억

무엇을 저리 골똘히 생각하고 계신걸까요? 화가는 카메라 대신 붓을 들고 아주 빠르게 저 장면을 그려내고자 했을 겁니다. 화가의 빛나는 눈빛 긴박한 숨소리와 재빠른 붓놀림이 거친 화강암이 되어 종이 위에 옮겨집니다. 영화 '박수근'이 나오길 기다립니다.ㅎ

 

10. 집골목 (창신동 풍경) 5.3억

개구쟁이 시절 골목 대장 놀이를 하던 아이들은 지금쯤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요? 그렇게 그림은 소중한 추억의 불쏘시개가 됩니다.

 

홍익대가 왜 실기를 없앴는지 아시겠지요.

 

김환기

 김환기(金煥基, 1913년 4월 3일 ~ 1974년 7월 25일)는 대한민국의 서양화가이다. 그의 작품은 한국의 미술품 경매의 신기록을 쓰고있다.

본관은 김해(金海)이며 호는 수화(樹話)이고, 전라남도 신안군 안좌면 읍동리 출생이다.

 1936년 일본 니혼 대학 미술학부를 마치고 도쿄에서 개인전을 개최하였다. 1946년-1949년 사이에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교수를 역임하고 신사실파전(新寫實派展)에 출품했다. 여러 차례 국전 심사위원으로 활약하고 1952년 홍익대 미술학부 교수, 1954년에 예술원 회원이 되었다. 1956년 프랑스로 건너가 파리 엠베지트 화랑을 위시하여 1957년 파리·니스·브뤼셀 등에서 계속 개인전을 가졌다. 1959년 귀국하여 홍익대 교수·초대 예술원 회원·한국미술협회 이사장을 역임하였다. 1963년 제7회 상파울로 비엔날레 한국 대표로 참가하게 되어 브라질로 갔고, 동 국제전의 명예상을 받았으며, 그곳 현대미술관에 작품이 소장되었다. 1964년 이후 부인인 수필가 김향안(金鄕岸, 본명 변동림)과 함께 미국에 체류하며 작품 활동 중 그곳에서 사망했다.

2015년 김환기의 1971년작 작품 <19-Ⅶ-71#209>은 서울옥션 홍콩 경매서 한화 47억 2100만원 (3100만 홍콩달러)에 낙찰되었고, 이로써 이전의 최고가로 남아있던 박수근의 <빨래터>를 제치고 국내 작가 미술품 경매 중 최고가를 기록했다.

2019년 11월 23일 김환기의 1971년작 작품은 크리스티 홍콩 경매서 한화 132억 3600만원 (8800만 홍콩달러)에 낙찰되었고, 한국 미술품 중 최초로 한화 100억을 넘긴 작품이 되었다.

한국의 서양화가로 한국 근현대미술사를 대표하는 거장으로 서구 모더니즘을 한국화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초창기 추상미술의 선구자였고, 프랑스와 미국에서 활동하며 한국미술의 국제화를 이끌었다. 김환기는 추상 계열에서 벗어나 구상을 추구하면서도 오히려 조형수단의 자율적인 표현을 추구했다. 또한 사실적인 표현보다는 면, 선, 형태, 색체, 리듬 등으로 대상을 조형적으로 새롭게 표현했다.

(위키 백과 중 일부)

 

1. 우주 (Universe 5-IV-71 #200) 131억 8,750만원

254cm x 254cm. 어떤가요? 왜 이중섭 작가의 그림이 더 비싸다고 했는지 아시겠죠?

 

2. 03-II-72 #220(1972) 85.3억

마티스, 고흐, 피카소의 그림은 갈수록 촌스러워지고 유치해지고 기괴해집니다. 그리고 그들의 마지막은 추상성으로 정점을 찍죠. 그렇다면 이 그림은 과연 어느 단계에 있는 그림일까요?

 

3. untitled(1971) 72억

정중동을 넘어선 파란 점으로 이루어진 선과 면은 저그림이 그림인지 의심하게 만듭니다. 우린 저그림에서 무언가를 찾아내야할 것 같은 조바심을 느낍니다. 그러다 결국 각자의 이야기를 만들어 내죠. 그런 의미에서 추상화는 수만 가지의 그림을 그려낸 것이 아닐까요?

 

4. 고요(Tranquility) 5-IV-73 #310’(1973) 65.5억

규칙과 비규칙, 정형과 비정형성, 고요함은 그렇게 반대의 요소들을 차단하고 밀어내야 느껴지는 것인데 차크라를 그린다면 마치 저 모습이 아닐까요?

 

5.  ‘12-V-70 #172’ 1970 63억 2,600만

정확한 색이 나타났는지 모르겠지만 황금색을 보여주기엔 화면이 아직 미흡하겠지요. 한점 한점 놓은 수들이 하나같이 다른 모양으로 살아있습니다.

 

6. 무제 27-Ⅶ-72 #228 (1972) 54억

내안에 존재하는 모든 의식에 제목을 달 수는 없었나봅니다. 단순한 것이 가장 아름다운 것임을 느끼게합니다.

 

7. 무제 1970 48억 6,750만

무엇이 보이시나요? 전 아직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저게 보일 때 쯤이면 어느새 상념 하나를 만날 수 있을 듯합니다.

 

8. 19-Ⅶ-71 #209. 1971. 47억 2,100만

 

9. '무제 3-V-71 #203'(1971) 45.6억

 

10. 항아리 39.3억

개인적으로 김환기 작가의 작품 중에서 가장 소장하고픈 작품입니다. 하지만 워낙 커서 걸지는 못합니다. ㅎㅎ 

 

이상으로 '내로라하다'의 물욕이 꿈틀거린 시간 

'내욕망과순수사이'였습니다.

 

 

참고한 사이트입니다. 더욱 자세한 정보를 원하시면 아래의 사이트를 찾아가 보세요.

 

SeoulAu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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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w.seoulauction.com

 

케이옥션-회사소개

케이옥션은 2005년 9월에 설립된 국내대표 미술품 경매회사입니다.

www.k-auction.com

 

k-Artprice

[장욱진 작품가격 TOP10]1949년 그린 '독' 7억 최고...낙찰총액 90억 10위 #그림은 절로 크지 않는다. 화가는 그림을 낳지만, 그림을 키우는 건 컬렉터다. 시작가는 6억5000만 원. 낙찰되면 2014년 작가의 '진진묘'(1970)가 기록한 역대 최고가(5억6000만 원)을 넘게 된다. 경매장에 오른 '독'(45.8×38cm). 그동안 알려진 화풍과는 사뭇 달랐다. 새·나무·자동차·사람, 동심과 밝은 익살이 가득한 그림들과 달리 어둡고 묵직

artprice.newsis.com

 

한국 근현대미술 두 거장의 `아름다운 열정` - 경북매일

경주힐튼호텔 아트선재미술관이 우양미술관으로 새 단장해 13일부터 `한국 근현대미술 거장전-아름다운 열정, 박수근·이중섭` 전을 연다. 국내 경매 사상 최고가인 45억2천만원에 낙찰된 박수근의 1950년대 작...

www.kbmaeil.com

 

박수근 화백의 진한 여성 사랑 - 여성신문

박수근은 유독 여성의 삶을 화폭에 많이 담았던 화가다. 박수근의 면모를 잘 드러낸 이로는 소설가 박완서가 잘 알려져 있지만 그의 아내 김복순이야말로 빼놓을 수 없는 박수근 이야기꾼이라 하겠다. 아내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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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억500만원…박수근 그림 경매최고가 경신

박수근(朴壽根·1914∼65) 화백의 유화 ‘아이 업은 소녀’가 1일 열린 서울 종로구 평창동 서울옥션 경매에서 5억500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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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 앉아만 있어도 가격이 올라…박수근 '앉아있는 소녀'

박수근 ‘앉아있는 소녀’(사진=서울옥션)[이데일리 김용운 기자] 한국미술시가감정협회와 미술경제 전문 월간지 ‘아트프라이스’는 올 한해 국내 미술품 경매 9개사의 미술품 경매를 집계해 최고가 작품 ‘톱10’을 22일 발표했다. 8위를 차지한 박수근의 ‘앉아있는 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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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sts 김환기

수화(樹話) 김환기 선생님은 한국 추상미술의 제1세대로서 세련되고 승화된 조형언어로 한국적 서정주의를 바탕으로 한 고유의 예술 세계를 정립하여 한국을 비롯, 현대 미술의 중심지인 파리와 뉴욕까지 그 이름을 알렸다. 그는 1930년대 후반 경부터 가장 전위적인 활동의 하나였던 추상미술을 시도, 한국의 모더니즘을 리드하였으며 현대적이고 절제된 조형언어를 바탕으로 이룩한 그의 정서 세계는 50년대에 이르러 산, 강, 달 등 자연을 주 소재로 더욱 밀도 높고 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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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억5000만원’ 김환기 작품 또 최고가 경신

‘한국 추상회화의 거장’ 김환기(1913∼1974)의 작품이 12일 경매에서 65억5000만원에 낙찰됐다. 한국 미술품 경매 사상 최고가 기록이다. 12일 오후 서울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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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hibitions 2012 한국 현대미술의 거장 김환기

갤러리현대는 2012년 새해를 맞아, 탄생 99주년을 맞은 고 김환기 화백의 대규모 회고전 <한국현대미술의 거장 – 김환기>를 1월 6일부터 2월 26일까지 두 달에 걸쳐 진행한다. 이번 전시는 2010년 박수근, 2011년 장욱진에 이어 갤러리현대가 세 번째로 기획한 한국 근현대미술을 대표하는 거장의 작품세계를 재조명하는 대규모 회고전으로, 김환기 화백의 시대별 주요 작품 60여점을 총망라하여 전시된다. 이번 회고전을 기념하여 갤러리현대와 마로니에 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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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환기 구상화 홍콩 경매 출품…현지 반응 주목

한국 근현대 작가 중 최고 가격의 경매 기록을 보유하고 있는 김환기의 구상화가 작품이 홍콩 경매시장에 선보인다. 한국적 서정주의와 서구의 모더니즘을 접목한 김환기의 작품이 홍콩 미술시장에서 어떤 반응을 얻을지 주목된다.서울옥션은 오는 29일 홍콩 상설 전시장 SA+에서 여는 올해 첫 현지 경매에서 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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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섭 '소' 작가 최고가 35.6억 깰까

이중섭 '소' 작가 최고가 35.6억 깰까 7일 서울옥션 메이저경매 조상인 기자 2018-02-28 13:30:23 문화 35면 이중섭의 ‘소’가 추정가 20~30억원에 7일 열리는 서울옥션 경매에 나온다. /사진제공=서울옥션 미술품 경매회사 서울옥션(063170)의 올해 첫 메이저경매인 ‘제 147회 서울옥션 미술품 경매’가 7일 종로구 평창동 본사에서 열린다. 올해 미술시장의 향방을 가늠할 수 있는 이번 경매에는 총 163점, 약 125억원(낮은 추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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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환기 '무제', 홍콩 경매서 45억6천만원에 낙찰…역대 3위(종합) | 연합뉴스

김환기 '무제', 홍콩 경매서 45억6천만원에 낙찰…역대 3위(종합), 권혜진기자, 문화뉴스 (송고시간 2016-05-30 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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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근영의 오늘 미술관] 그리움

김환기, 19-Ⅶ-71 #209, Oil on cotton, 253×202cm, 1971. [사진 서울옥션]“밤이 깊을수록/ 별은 밝음 속에 사라지고,/ 나는 어둠 속에 사라진다// 이렇게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김광섭의 시 ‘저녁에’에서 따온 김환기의 ‘어디서 무엇이 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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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환기 작품 54억 낙찰… 또 신기록

김환기(1913∼1974)가 한국 미술품 경매 최고가 기록을 3회 연속 경신했다. 28일 오후 서울 강남구 K옥션에서 열린 ‘2016 여름경매’에서 김환기의 1972년 유채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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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환기 또 `한국미술 최고` 기록 깨나 - 매일경제

27일 서울옥션 홍콩경매에 58억作 출품 국내 경매기록 5위까지 싹쓸이 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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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억5000만원’ 김환기 작품 또 최고가 경신

‘한국 추상회화의 거장’ 김환기(1913∼1974)의 작품이 12일 경매에서 65억5000만원에 낙찰됐다. 한국 미술품 경매 사상 최고가 기록이다. 12일 오후 서울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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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차례 호가 경쟁 끝 132억 낙찰…김환기 '우주' 韓 미술사 다시 썼다

한국 미술시장의 ‘대장주’ 김환기(1913~1974)의 작품이 한국 미술품 경매 역사를 새로 썼다. 미술품 경매회사 크리스티가 지난 23일 홍콩컨벤션전시센터에서 연 ‘20세기 & 동시대 미술’ 경매에서 김환기의 1971년작 푸른색 점화 ‘우주, 5-IV-71 #200’이 8800만홍콩달러(약 132억원)에 낙찰됐다. 10분간 33회 치열한 입찰 경합 이날 17번째 경매 미술품으로 등장한 ‘우주’의 시작가는 4000만홍콩달러(약 59억원). 경매가 시작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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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섭의 ‘사계’와 유일한 편지화 서귀포에 왔다.

이중섭미술관은 각기 다른 특성을 가진 '사계' 등 이중섭 원화 작품 3점과 현재 유일하게 남아 있는 이중섭의 편지화 1점을 확보했다고 밝혔다.이중섭의 자유로운 드로잉이 살아 숨 쉰다는 평가를 받는 '사계'는 오른쪽 위를 중심으로 시계반대방향으로 봄, 여름, 가을, 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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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욱진, 이중섭, 천경자…근현대 대표작품 나란히 경매

장욱진, 이중섭, 박수근, 김환기, 천경자 등 한국 근대 작가의 대표작이 나란히 경매에 나온다. 서울옥션은 다음 달 7일 서울옥션 평창동 본사에서 올해 첫 미술품 경매를 연다. 이번 '제143회 서울옥션 미술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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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손이천의 경매이야기]남아있는 소 그림 겨우 아홉 점...희소해서 더 빛나는이중섭

이중섭의 양면화 ‘큰 게와 아이들’이 추정가 2억~5억원에 경매에 나왔다. /사진제공=케이옥션최근 열린 미술품 경매에 출품된 이중섭의 ‘소’가 47억원에 낙찰되며 세간의 이목을 끌었다. 이는 해당작품의 추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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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우양미술관 박수근·이중섭展 13일부터

한국 근대미술을 대표하는 작가 박수근과 이중섭의 작품을 나란히 볼 수 있는 전시가 경주 우양미술관(옛 아트선재미술관)에서 13일부터 9월3일까지 열린다.그동안 회고전, 단체전 등을 통해 이들의 작품이 소개된 적은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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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서야 소원 이룬 이중섭, 그의 애틋한 가족 사랑

서울 망우리 묘지공원에서 만난 이중섭 화가의 무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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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이 있는 아침] 박수근 '귀로'

‘국민화가’로 불리는 박수근(1914~1965)은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6·25전쟁을 거치면서 자신만의 시각으로 독자적인 작품들을 탄생시켰다. 정식 미술교육을 받지 않았지만 평생 성실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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