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년 전인 2003년 10월,
제이 매키너니는 소설집 <하우 잇 엔디드>의 프랑스어 출간에 즈음하여 파리에 머무르고 있었다. 내가 그를 처음 만난 것은 그때였다. 그는 9·11 사태 이후 미국에서 사라진 무사태평함을 그립게 회상했다. 또한 그는
"그의 세대가 도래하기까지 미국 문학에서 도시 생활의 경험은 그리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았다"
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그 자신에게 특별한 영향을 준 작가들을 이야기했다.
휴가가 다가오면,
"무인도에 갈 때 가져갈 책 세 권은 무엇입니까?"
라는 질문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매키너니는 발자크의 <사촌 베트>를 선택했는데, 앙드레 지드도 예전에 같은 대답을 했다는 사실을 그는, 그리고 나도 몰랐다.
기억 혹은 망각에 도전하는 이러한 친화력에 나는 관심이 끌렸다.
신비의 책, 비밀의 암호, 근 백 년의 간격을 둔 은밀한 교신? 보물찾기가 시작되었다.
지드는 가상의 인터뷰에 응하는 새로운 방식을 이용했다.(위조꾼다운 행동이다). 지드의 글은 이렇게 시작한다.
"어느 유력 일간지에서 내가 좋아하는 소설 열 편을 꼽아달라고 했다."
그런 다음 그는 약간 향수 어린 어조로 고등학교 졸업반이던 스무 살 때 피에를 루이스와 즐겼던 그 소소한 놀이를 떠올린다. 새 학기마다 두 친구는 무인도에 가져갈 책 스무 권의 목록을 작성하곤 했다. 지드에게 이는 양심의 시험이자 까다로운 연습이었고 <지상의 양식>에서 그는 이런 글을 쓴다.
"선택한다는 것은 나머지 전부를 영원히, 완전히 포기한다는 것이며,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그 나머지는 어떤 하나보다도 더 나아 보인다."
무인도는 시간의 시련에 버티는 보드게임이며, 그 창조신화의 은둔한 메아리들로 하여금 우리 상상계의 지층들을 들추게 한다.
'보물섬'인가, '검은 섬'인가? 잃어버린 낙원과 지옥 같은 유배 생활, 해방과 은둔, 여흥과 비탄, 재창조와 퇴행 사이의 신비한 섬?
프로스페로*인가 네모인가? 오디세우스를 7년간 잡아두었던 님프 칼립소의 섬에서, 그 네 배에 달하는 28년의 세월을 보낸 로빈슨 크루소의 섬에 이르기까지, 무엇으로도 부를 수 있는 섬, 로빈슨 크루소가 살았던, 오리노코강의 대서양 하구에서 멀지않은 아메리카 대륙의 유토피아적인 해안은 미쎌 투르니에의 <방드르디, 태평양의 끝>에서 짓궂은 전도*를 통해 태평양으로 바뀐다. '절망의 섬'이라 이름한 그곳에서 로빈슨 크루소는 <성경>을 읽고, 그에게 유일하게 아쉬운 것은 곁에 사람이 없다는 사실뿐이다.
*미국 인디애나주 페리카운티에 있는 지명 / *엎어져 넘어지거나 넘어뜨림
10년 후 그는 기고문에서 자신의 게임의 규칙을 정한다.
각각의 책은
"우주에서 가장 중요하거나 우리의 개인적 경험에서 가장 기억할 만한 것"
으로 상정*되지는 않는다. 그리하여 그는 의외의 세 권을 제시한다. 버트런드 러셀의 <수리 철학 서설> 또는 탁월하고 엄밀한 대수학서,
"예를 들어 쇼펜하우어의 <의지와 표상으로의 세계>같은"
형이상학* 책 한 권, 그리고 플루타르크나 기번 혹은 타키투스 중에서 고른 역사서 한 권. 이 대답을 통해 보르헤스는 새로운 해석의 문을 연다. 우리에게 이상적인 서재라는 유혹을 일깨우는 세 가지 테마, 세 가지 분야.
정체停滯인가 확장인가? 어떻게 여기서 벗어날 것인가?
1956년, 레몽 크노는 '이상적인 서재를 위하여'라는 제목의 문예 설문조사를 발표해 자기 버전의 무인도 놀이를 제안했다.
"우리는 작가나 여러 유명인 200명에게 설문지를 보내면서 실질적으로 답변을 용이하게 하기 위한 일종의 메모를 첨부했다. 우리는 공동으로 어떤 '이상적인 도서관', 다시 말해 '교양 있는 사람이라면 모두가 읽었을' 작품 100편의 목록을 확보하고 싶었다."
응답한 이들도 있었고 거절한 이들도 있었는데 거기에는 종종 긴 해명이 따라붙었다. 이 놀이를 진심으로 즐기고 본인에게 중요한 책 100권의 목록을 제공해준 이들 40명 가운데에는 폴 클로델, 조르주 심농, 폴 엘뤼아르, 헨리 밀러, 앙드레 모루아가 있다.
선택된 목록의 첫머리에는 셰익스피어, <성경>, 프루스트, 몽테누, 라블레가 있는데, 보면 알겠지만 60년이 지났음에도 이들은 우리 설문의 답변에 여전히 등장한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이루어졌을까?
1919년 초현실주의자들이 동시대 작가들에게 던졌던
"당신은 왜 글을 씁니까?"
라는 질문부터, 내 동생 막스와 함께 1994년 <르누벨옵세르바퇴르>지에서 진행했던 질문 '세계의 하루'에 이르기까지 말이다.
그들의 열정은 내게, 글쓰기를 인생으로 하는 이들은 전달하는 일이라면 국경을 넘어 결집한다는 것을 입증해주었다.
독자들이 공동의 일치 안에서 그들과 만날 수 있는 일종의 형제회, 동업조합을 결성하는 것이다. 각각의 책은 식별코드다.
각 저자는 다른 이들이 쓴 책에서 양분을 얻고, 탁월한 작품들이 태어나는 비밀의 정원을 가꾼다.
소설의 태곳적부터 작가들은 회고록, 일기, 서신문을 통해 우리에게 책에 대한 사랑을 털어놓는다. 원초적 영감, 창조의 기쁨, 창시자 영웅들, 불멸의 열정, 조상들의 먼지, 우연한 만남, 국경의 충돌, 전달의 띠들이다.
시대적인 면에서는 고전들이 생존 작가들에게 압승을 거두었다. 현대 작가들에 대한 인용은 상당히 드물다.
몇몇 유명한 이름은 빠져 있다. 빠진 부분은 언제나 있을 것이다. 질문자의 비난 받아 마땅한 망각 때문이거나, 시간표가 소설적인 긴급한 일로 가득 차 다른 데 주의를 돌릴 겨를이 없거나, 아니면 작가인 여행자가 장기 파견을 나갔는지도 모른다. ...... 기존 질서로 이루어진 이 혼돈 속에서, 빈틈을 메우고 자신만의 조합을 상상하는 것은 독자의 몫이다.
우리에게 소중한 부재자들과, 여기 선정되지 않은 책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그들의 빈자리가 있기에 여기 실린 책들이 있을 수 있었다.
P.S. 마지막으로, 그리고 지드와 루이스처럼 결과를 부풀리기 위해, 그러니까 약간의 술수로, 설문에 참여해준 각 작가의 주요 저서를 세 권까지 써놓았다. 제안이자 소개, 경의의 의미로.
지금부터는 그들이 보낸 글이다.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우선 섬 생활의 조건을 내가 선택한다는 설정에서 시작하겠다. 그렇지 않다면 그런 가정을 진지하게 검토하기 어려울 테니까, 나는 치누아 아체베의 <신의 화살>을 가져가겠다. 어렸을 때부터 나는 이 책을 여러 차례 읽고 또 읽었으며 매번 새로운 보물과 기쁨을 얻었다. 내게 이 책은 단순히 문학이 아니다. 개인적 역사의 이야기이며, 되찾은 존엄성의 표지다.
내 머리맡 탁자에 예전부터 읽으려 했던 책들이 쌓여 있는데, 그중 한 권, 제일 두꺼운 것을 가져가려 한다.
마지막으로, 데릭 월컷의 시 전집을 가져가겠다. 그의 시들은 완벽에 가장 가깝기 때문이다. 여러 해 전부터 나는 주기적으로 그 속에 빠져들며, 매번 빠져들때마다 행복과 삶에 대한 확신을 느낀다.
-1977년 아바(나이지리아)출생, 보랏빛 히비스커스, 태양은 노랗게 타오른다. 아메리카나를 씀
제가 데릭 월컷(1930~)의 시를 두 편 구해왔습니다. 번역의 어색함이 있으니 이해바랍니다^^;.
한여름, 토바고 - 데릭 월컷
태양이 내리 쬐는 넓은 해변들
하얀 더위
푸른 강물
다시 말라붙은 노란 야자나무들
여름에 잠자는 집에서
8월 내내 꾸벅 졸며
내가 붙잡았던 날들
내가 잃어버린 날들
딸애들처럼 웃자라서
내 팔을 빠져나가는 날들
Love After Love -Derek Walcott The time will come when, with elation |
사랑 뒤의 사랑 -데릭 월컷 때가 올 것이다, 의기양양하게 너의 집 문 앞 거울 속에 도착한 너 자신을 기쁨으로 맞이할 때가 미소지으며 서로를 맞이할 때가 그에게 말하라 이곳에 앉으라고 그리고 먹을 것을 차려주라 한때 너 자신이었던 그 낯선이를 너는 다시 사랑하게 될 것이다. 포도주를 주고 빵을 주라 너의 가슴을 그에게 돌려주라 일생동안 너를 사랑한 그 낯선이에게 다른 누군가를 찾으라 내가 외면했던 너 자신에게 온 마음으로 너를 아는 그에게 책꽂이에 있는 사랑의 편지들을 치우라 사진과 절망적인 글들도 거울에 보이는 너의 이미지를 벗겨내라 앉으라 그리고 너의 삶을 살라 |
글을 쓰는 작가들에게 단 세 권의 책만 선택하라니, 뭔가 나올 것 같은 기대감이 생기는 책이다. 과연 내가 무인도에 간다면 어떤 책을 챙겨갈 것인지도 잠시 생각해본다. 가장 읽기 힘든 책 중 하나인 주역(역경)을 챙겨야겠고, 여러 권처럼 느껴지는 천일야화 같은 것도 있어야겠고, 그리고 사서삼경이나 탈무드, 오헨리 단편선 같은 최대한 짧은 이야기들이 많이 들어간 책을 챙겨가고 싶다. 매일 하나씩 돌려 읽어야할테니 ㅎㅎ 뭐지? 그런 책들을 맘껏 읽을 자유 시간을 나에게 준다고?? 왠지 무인도가 기대가 되는 이 현실... 슬프구나 ㅜㅜ
처음 등장하는 작가는 왠지 의미가 있을 것 같아서 등장시킨다. 덕분에 '데릭 월컷'이라는 좋은 시인도 만나게 되었다. 그의 '한여름'이라는 작품을 보면 왠지 또다른 '윌리엄 워즈워스'를 만난 기분이다. 시가 깊어질수록 순수해지는, 다시말하면 순수한 시 같은데 의미 심장하달까?
'사랑 뒤의 사랑'이란 시는 아마도 작가의 20대 시절에 쓴 시가 아닐까 추측해 본다. 사랑에 상처받은 자신을 보듬으며 다시 본인의 삶을 살아가라는, 실연의 상처는 빨리 잊고 자신을 탓하지 말라는 말을 시인은 참 아름다운 서정시로 표현한다.
시와 소설과 비평문 중에서 가장 쓰기 쉬운 글은 뭘까?
가장 쓰기 쉬운 하수의 글은 비평문이라고 한다. 중수의 글이 소설이고, 고수의 글이 바로 시란다. 그러니 시를 좀 쓴다고 함부로 나서면 안 될 일이다. 물론 내로라하는 저명한 작가들 앞에서 말이다. 평민들 끼리야 뭐 즐겁게 쓰고 서로 응원해주면 족하지 않은가^^
팝송에도 실연을 겪은 여인의 마음을 담은 노래가 있어서 감상하시라고 올려본다.
데릭월컷이 사랑이 지나간 후의 감정 정리라면, 노래는 이별 직후의 애절함이 느껴진다. 실제로 가수는 첫사랑의 실연을 겪은 후에 이 노래를 만들었다고 한다. 이처럼 노래와 시는 일맥상통한다. 뭐 노벨문학상도 가수가 타지 않았는가.
여러분이 무인도에 가져가실 세 권은 무엇인가요?^^
추신: 동기부여 글에서는 자유 의견 교환을 위해 답글을 달지 않습니다. 대신 놀러가겠습니다.^^
오늘의 낱말은 '형이상학, 상정'입니다.
형이상학1形而上學 : 형상 형 / 말 이을 이 / 위 상 / 배울 학
- 1.사물의 본질이나 존재의 근본 원리를 사유나 직관을 통해 연구하는 학문
- 2.초경험적인 것을 대상으로 하는 학문을 형이하 또는 경험적 대상의 학문인 자연 과학에 상대하여 이르는 말
- 3.헤겔과 마르크스의 철학에서, 비변증법적 사고를 이르는 말
-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서
- 1. 형이상학에 근거하거나 관련된
- 2. 형이상학에 근거하거나 관련된 것
- 그리스 초기의 자연 발생적인 변증법적 유물론 및 마르크스의 변증법적 유물론을 제외한 모든 유물론을 통틀어 이르는 말
- 외적인 제약이나 구속을 받지 않은 채 정신적으로 누리는 자유
영어사전
- 1. metaphysics
- 2. metaphysical philosophy
- metaphysical idealism
중국어사전
- 形而上学
- 形而上学
상정 [想定] 생각 상 / 정할 정
발음 [상ː정]
형태분석 [想定]
명사
(1)
어떤 정황을 가정적으로 생각하여 단정함. 또는 그런 단정.
-
이 우스꽝스러운 상정을 남들이 일소에 부칠지라도 그때의 나로서는 꽤나 심각한 상정이었다. 윤후명, 별보다 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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