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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로 사람의 목소리를 내고 싶었던 '쇼팽'의 사랑과 삶, 야상곡(녹턴) 전곡 듣기. 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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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데리크 쇼팽

 

쇼팽의 녹턴(프랑스어: Nocturne) 또는 야상곡(夜想曲)

 

폴란드의 작곡가인 프레데리크 쇼팽이 1827년에서 1846년까지 작곡한 21개의 곡으로, 독주 피아노의 연주와 연주회에서 연주되는 비중이 매우 높고 완벽한 작품으로 꼽힙니다.

쇼팽은 아일랜드의 작곡가인 존 필드가 창조한 녹턴(야상곡)을 더욱 확장시켜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널리 알려지게 했습니다.

녹턴 19번부터 21번까지는 사후에 출판, 그러나 19번부터 21번까지는 쇼팽이 폴란드에 있을 때에 작곡되어 1번보다 작곡시기가 앞섭니다.

쇼팽의 녹턴은 오른손의 멜로디가 노래를 부르는 듯한 서정적인 형식을 취하는데 이 형식은 21개의 녹턴에 전부 녹아있고 필드가 작곡한 점과 비슷합니다.

오른손의 감미로운 멜로디는 작품의 고유한 감정을 더욱 심화시키고 청자로 하여금 더욱 심취하게 만듭니다. 상상해 보세요. 오른 손의 움직임을...

또한 오른손에 맞추어 왼손은 아르페지오의 사용 빈도가 높은 편인데, 페달의 사용범위를 더욱 광범위하게 넓혀 감정표현의 단계가 한 층 심화되어, 극적인 멜로디를 만들어냅니다.

쇼팽은 '필드의 녹턴'에서 많은 것을 배워 자신만의 '쇼팽의 녹턴'을 만들어내기에 이르는데, 많은 사람들은 '쇼팽의 녹턴'을 '필드의 녹턴'과 모차르트의 음악을 한데 섞어놓은 듯하다고 평하기도 합니다.

지금 들리시는 녹턴 1,2,3번(작품번호 제9번)이 묶여서 처음 출판되었을 때, 비평가들로부터 많은 비판과 칭찬을 함께 들었으나 대체로 비판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초기에 비판을 한 비평가들이 나중에는 작품을 높이 평가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합니다. 재밌네요.^^

 

쇼팽이 1849년에 사망한 후 녹턴은 각 곡마다 인기가 천차만별이었으나 2개, 녹턴 2번(작품번호 제9-2번)과 녹턴 8번(작품번호 제27-2번)의 인기가 특히 높았습니다.

쇼팽의 생전과 사후에 생존해있던 많은 작곡가들은 쇼팽의 녹턴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고 그 영향이 고유한 작품에 표출되기까지 이릅니다. 

요하네스 브람스 리하르트 바그너와 같은 작곡가들은 쇼팽이 자주 사용하던 단순한 멜로디 작곡 기법과 방식을 차용하였고, 펠릭스 멘델스존, 로베르트 슈만 프란츠 리스트와 같은 작곡가들은 쇼팽의 녹턴에 숨어있는 천재성을 높이 평가하였습니다.

이로써 쇼팽이 작곡한 스물 한개의 녹턴이 낭만시대의 음악가들에게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하였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쇼팽의 사랑과 마지막 삶

 

1830년대 초중반의 파리는 작곡가를 위한 시기였습니다. 쇼팽이 유명한 작품들을 남긴 것이 이 때인데 1838년경에 그는 파리 시민들에게 유명인이됩니다.

1836년에 쇼팽은 17살의 폴란드 소녀인 마리아 보진스카와 비밀 약혼을 했다가 나중에 취소합니다. 같은 해에, 마리 다굴 백작 부인이 연 파티에서 소설가인 조르주 상드를 만납니다.

조르주 상드

그들의 연인 관계는 9년간 지속되었고, 쇼팽의 건강 악화와 상드의 자녀 문제로 헤어집니다.

쇼팽과 조르주 상드는 스페인 마요르카의 버려진 로마 가톨릭교회 수도원인 발데모사수도원 근처의 오두막에서 지낸 적이 있는데, 1838년 ~ 1839년 겨울에 혹독한 추위가 닥쳐서 쇼팽은 파리에서 먼 길을 거쳐 피아노를 가져와서 언덕에 있는 수도원으로 옮겨야만 했습니다. 쇼팽은 그 절박한 시간의 기분을 스물 네 개의 전주곡(작품번호 28)에 담습니다. 그중에서 한 곡을 들어보시죠.

전주곡 15번 내림 라장조 작품번호 28 '빗방울'

작품의 대부분은 마요르카에서 쓰여진 것입니다. 추위는 쇼팽의 건강과 폐병에 큰 타격을 주었고, 그와 조르주 상드의 관계 또한 불륜으로 의심받아 비난과 푸대접을 받습니다. 결국 파리로 돌아가야만 했던 쇼팽은 그 일 이후로 건강을 회복하지 못하고 결국 1849년 10월 17일 사망하게 됩니다.

로마 가톨릭 성 마들렌 교회에서 열리게 된 그의 장례식에는 그의 유언에 따라 모차르트의 레퀴엠을 연주하기로 했지만, 레퀴엠에는 여자 성악가의 역할이 커서 마들렌 교회에서는 합창단에 여자 가수를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이에 대한 마찰 때문에 장례식이 2주 동안 연기되었는데, 결국 교회 측에서 쇼팽의 마지막 소원을 위해 양보하게 됩니다.

 

모차르트 레퀴엠

쇼팽이 마지막으로 선택한 레퀴엠은 모차르트도 완성하지 못한 곡이죠. 마치 자신의 삶 또한 완성되지 못한 채 마감하는 절망감이 선율과 그의 폐부에 스미는 듯합니다.

쇼팽의 시신은 파리 Père Lachaise에 안장되었습니다. 그의 심장은 누나 루드비카 옝제예비치(Ludwika Jędrzejewicz)가 전달 받아 고향인 폴란드로 가져간 뒤 바르샤바의 성 십자가 성당에 있는 기념비 밑에 안치합니다.

21세기에 들어 보존된 그의 심장이 담긴 병을 열지 않고 관찰한 결과 심낭염으로 사망했다는 소견이 나왔습니다. 쇼팽이 앓았던 결핵은 심낭염의 일종인 결핵성 심낭염의 원인임을 이제야 밝혀냈군요. 

 

환상 즉흥곡 (즉흥 환상곡)

 

마지막으로 쇼팽에게서 빼놓을 수 없는 명곡 '환상 즉흥곡'입니다.

미로같은 슬라브를 타고 내려와 꿀같은 연주를 선사하시는 쉐프님. '미로슬라브 꿀띠쉐프' 님의 명연주 라이브입니다.^^

F. 쇼팽 - 환상 즉흥곡 (Pf. 미로슬라브 꿀띠쉐프)

환상 즉흥곡 은 오페라 선율을 모방하면서 그만의 독특한 반음계를 구사한 곡으로 쇼팽은 노래하는 목소리의 아름다움을 재현하기 위해 피아노를 쓴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노래하는 것 같나요? ^^

쇼팽은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아름다운 음악은 지금도 울려퍼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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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팽에 대해서 더 많이 알아보세요. 

 

녹턴 (쇼팽)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둘러보기로 가기 검색하러 가기 쇼팽의 녹턴(프랑스어: Nocturne) 또는 야상곡(夜想曲)은 폴란드의 작곡가인 프레데리크 쇼팽이 1827년에서 1846년까지 작곡한 21개의 곡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스물 한개의 녹턴은 독주 피아노의 연주와 연주회에서 연주되는 비중이 매우 높고 완벽한 작품으로 꼽히고 있다. 쇼팽은 아일랜드의 작곡가인 존 필드가 창조한 녹턴(야상곡)을 더욱 확장시켜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널리 알려지게 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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