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네치의 연구에서 한 가지 아쉬운 것은, 과제를 수행하기로 결심할 동기를 어떻게 확보할 지에 대한 힌트를 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담배를 끊는 과정도 어렵지만 금연하겠다고 마음먹기까지도 힘이 드는 것처럼, 어떤 과제를 목표로 채택하도록 만들려면 충분한 동기가 확보되어야 한다.
컬럼비아 경영대학원의 란 키베츠는 소위 '한 발 들여놓기'전략이 과제를 목표로 채택하도록 '활성화 에너지'를 제공한다는 사실을 간단한 실험을 통해 규명했다.
알다시피 몇몇 커피 전문점에서는 고객에게 열 잔이나 열두 잔 정도 마시면 공짜 커피 한 잔을 받을 수 있는 쿠폰을 준다.
이 쿠폰이 구매 행동에 영향을 줄 것이라고 짐작한 키베츠는 스탬프를 열 개 찍어야 공짜 커피를 주는 쿠폰과 열두 개를 찍어야 하는 쿠폰을 준비했는데, 열두 개짜리 쿠폰에는 두 개의 스탬프를 미리 찍어뒀다.
그는 두 가지 쿠폰을 학생들에게 무작위로 나눠주고 그들이 공짜 커피를 얻기까지 걸린 시간을 측정해보기로 했다.
사실 똑같이 열 개의 스탬프를 찍어야 공짜 커피를 마실 수 있기에 공짜 커피를 받기까지 걸린 시간은 차이가 없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스탬프 열두 개짜리 쿠폰(이미 두 개가 찍혀 있는)을 받은 학생들은 열 개짜리 쿠폰을 받은 학생들보다 20%나 빨리 공짜 커피를 받았다. 전자는 평균 12.7일이 걸린 반면, 후자는 15.6일이 걸렸으니 말이다.
두 개의 스탬프가 미리 찍힌 열두 개짜리 쿠폰을 주면 '벌써 두 개나 찍혀 있네.'라는 긍정적 반응을 유도하여 나머지 스탬프도 빨리 찍고 싶다는 동기를 유발한다.
이 밖에도 관련 없을 것 같은 요소가 법리적 판단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는 연구는 많다. 토머스 무스바일러 등의 독일 연구자들은 법률 전문가들에게 범죄자의 형량을 개별적으로 판단해줄 것을 요청했다.
다만 한 그룹의 전문가들에게는 1과 2만 나오는 주사위 한 쌍을, 다른 그룹에게는 3과 6만 나오는 주사위 한 쌍을 던지게 한 뒤, 범죄자의 형량이 주사위 숫자 합보다 큰지 작은지를 묻고 최종적으로 형량을 정하게 했다.
법률 전문가들이 제시한 형량은 1개월부터 12개월까지 다양하게 분포했는데, 숫자의 합이 3인 주사위를 던진 그룹은 평균 5.28개월, 숫자의 합이 9인 주사위를 던진 그룹은 평균 7.81개월의 형량을 내렸다. 주사위 숫자라는 정보는 형량과 아무런 관련이 없음에도 이런 차이가 나왔다는 사실은 전문가들조차 객관적인 의사결정을 하지 못한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데, 이 또한 전문가의 의견을 비판적으로 수용해야 하는 이유 중 하나라 할 수 있다.
댄지거와 무스바일러의 연구를 기업의 관점에서 해석하면, 회사 내에서 벌어지는 여러 종류의 심사, 평가, 승인은 대상이나 내용의 본질보다는 참석자의 피로도와 배고픔 정도에 따라 결정될지 모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휴식과 식사시간 후에 접하는 결재 건에 대해서는 필요 이상으로 깐깐하게 굴지 모른다. 므카엘 사이몬즈의 연구에 따르면 상사가 비만이라면 위험 부담이 큰 결재는 식사 후에 받는 것이 유리하다고 한다. 오전 일찍 면접을 본 입사 지원자들은 높은 합격률을 보인다.
학생들에게 실험의 목적을 알리지 않고 도우미와 엘리베이터에 타도록 한 후, 어떤 학생들에게는 차가운 커피를 어떤 학생들에게는 따뜻한 커피를 잠깐 들어달라고 부탁한다.
'Person A'라고 불리는 가상의 사람의 자료를 주고서 그 사람이 얼마나 지적이고 단호하며 조심스러운지 등 열 가지의 성격 특성을 평가하라는 요청을 받았다.
그랬더니 손에 따뜻한 커피를 잡았던 학생들은 차가운 커피를 쥐었던 학생들보다 A를 더 따뜻한 사람으로 평가하는 경향이 발견되었다. 손에 느껴지는 온기가 다른 사람을 평가하는 데 의미 있는 차이를 유발한다는 점이 밝혀진 것이었다.
혹시 지금 상사에게 평가 혹은 결재를 받아야 한다면, 또는 누군가와 중요한 협상을 하기 전이라면 그에게 아이스커피보다는 뜨거운 커피를 권하는 것이 좋다. 시원한 음료가 당기더라도 그렇게 하는 게 유리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온도뿐만 아니라 촉감이나 무게감 등도 상대방에 대한 객관적인 판단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여름은 좀 고민해야겠군요.^^)
빨간색 넥타이를 맸을 때의 수입과 리더십을 파란색 넥타이를 맸을 때보다 낮게 평가하는 경향을 보였다.
채용하고 싶은 마음과 전반적인 호감도에서도 빨간색 넥타이를 맸을 때의 점수가 상대적으로 저조했다. 빨간색이 강렬한 인상은 줄 수 있을지언정, 능력을 평가받는 상황에서는 지원자 자신의 진짜 능력을 평가절하하는 역효과를 발생시킴을 알 수 있다. 물론 빨간색 옷을 입었다 해도 면접관의 질문에 똑 부러지게 답함으로써 첫인상을 뒤집을 수는 있지만, 그렇다 해도 일부러 빨간색 옷이나 넥타이 차림 때문에 점수를 깎일 필요가 있을까?
지금까지 살려봤듯이, 사람들은 무언가를 평가하거나 의사결정을 내릴 때 대상의 본질을 객관적으로 판단한다고 자신하는 경향이 있다.
사람들은 배가 부르거나 정신이 맑을 때는 과감하거나 관대한 결정을, 배가 고프거나 피로가 엄습할 때는 현상을 유지하려는 성향이 발동하여 새로운 사안을 거부하거나 까칠하게 판단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무언가를 판단하거나 의사 결정을 내릴 때 자신의 판단력이 합리적일 것이라고 믿기보다는 현재의 감정 상태, 말 한마디, 혈당의 차이, 날씨 등이 엉뚱한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점을 경계하는 것만으로도 의사 결정의 위험을 일정 부분 피할 수 있다.
인간은 이성적이기 이전에 감정과 본능의 동물이므로 조직에서 어떤 지위에 있든지, 어떤 권한을 보유하고 있든지 크고 작은 사안을 결정할 때마다 이 점을 필히 염두에 두어야 한다.
중국은 ai판사도 도입한다고 하던데 이 글을 보면 우리도 시급해 보입니다. 실제로 밥 먹기 전과 밥 먹은 후에 판결이 달랐다니 정말 통탄할 노릇입니다.
기자가 내일 쓸 기사에 참고하고 싶다면서 판결 전날 판사에게 전화를 건 뒤, 그 사람은 1년 형 이상인가요? 라고 물었을 때와 3년형 이상인 가요?라고 물었을 때, 과연 누가 더 많은 형을 선고받을까요?
저도 사람이지만 이런 경우 사람 편에 서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제 실전에 적용해 볼 차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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